[아츠앤컬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어를 읽지 못한다.’는 뉴스가 있다면 분명 가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유펜와튼 스쿨 출신이다. 그는 평소에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포함해 사람들의 명석함에 대해 평가하길 좋아해왔다. 그런데 CNN은 트럼프가 실제로 영어도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공격당했다고 보도했다.
전말은 이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영화 ‘기생충’이 2020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에 대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금년도 아카데미는 매우 나빴다. 남한에서 온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며 재임을 위한 선거 유세 중 청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또한, 미국은 1930년대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NN은 트럼프의 올해 아카데미상 비판에 대해 영화 ‘기생충’의 미국 배급을 받은 NEON사 대표가 바로 다음날 트위터에 “이해할만하다, 그는 읽을 수가 없다.”라고 썼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은 영화 ‘기생충’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 작품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이나 하나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작품상은 미국에서 영어로 만들어진 작품에 주어져야 한다며 재선에 나서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서 유권자들과 공화당 열혈 지지자들의 국수주의에 호소한 것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 시각으로는 당연한 결론이자 코멘트다. 여기에 대해 NEON사 대표는 트럼프가 ‘기생충’ 자막을 읽을 줄을 모르니 그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기생충’의 미국 배급을 맡은 회사 책임자로는 정말 멋진 반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어떻게 아카데미상을 투표한 수천 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은 ‘기생충’의 작품성을 이해했을까. 그것은 화면 밑에 보이는 영어 자막 덕분이다. 흔히 번역은 반역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원어와 원작품의 뜻을 전달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번역이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세상의 수많은 고전은 각 시대에 전 세계로 전파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번역은 반역이 아니라 필수적 행위이자 새로운 창작의 세계임이 널리 증명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외국에서 맨부커를 비롯해 수많은 상을 탔던 것도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의 힘이 컸다. 맨부커 측은 국제부문 상의 경우 소설가와 번역자에게 동일하게 5만 파운드씩의 상금을 주고 있다. 그만큼 번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에게 데버러 스미스가 있다면 영화감독 봉준호에게도 든든한 달시 파켓이 있다. 달시 파켓은 1997년 고려대에 영어 강사로 한국에 처음 온 이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지금까지 봉 감독의 ‘괴물’, ‘설국열차’,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 한국 영화 150여 편의 영어 자막 작업을 해왔다. 봉준호 감독은 외국인들이 ‘기생충’ 관람 중간중간에 박수를 치며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영어 자막이 내용을 정확히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달시 파켓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오랜 기간 검증된 번역가 달시 파켓의 ‘기생충’ 번역 중 가장 명 번역으로 알려진 것은 딸이 컴퓨터 조작으로 재수생인 아들 명의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증명서를 만들어왔을 때의 아버지 송강호의 대사다.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거없나?”를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라고 번역한 것이다. ‘기생충’ 영화에서는 분명히 화면상으로 딸이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했는데 아버지 송강호는 한국 최고의 대학으로 연세대가 아닌 서울대를 언급했다. 처음에는 서울대를 Seoul national university로 옮겼지만 웃기는 대사인 만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며 토론을 거쳐 옥스퍼드로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면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모를 수 있고, 하버드는 늘 나오는 이름이니 좀 다르게 가려고 옥스퍼드를 골랐다”고 말했다. 하버드나 옥스퍼드에게 한 방 먹은 서울대나 연세대 등 한국 대학은 모두 더욱 분발할 일이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에코 에너지 대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