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동북아시아는 예로부터 유목민족이 지배하던 곳이었고 그로 인해 여러 부족 사이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각자의 역사를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름만 해도 흉노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돌궐족, 몽골족 등 다양하다. 한반도의 북쪽은 대륙의 여러 부족, 국가들의 공격으로 영토가 늘었다 줄기를 반복했고 남쪽에서는 토착 국가 간의 영토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유독 한 나라가 북쪽 유목민족의 풍습을 길게 유지했는데 바로 신라다. 신라 김씨 왕족이 조상으로 모시는 한나라의 김일제는 흉노족이었다. 또한 신라는 그 시대에도 저 멀리 페르시아 땅까지 황금이 넘치는 나라로 과장되게 알려졌는데, 실제로도 전 세계에서 발굴된 고대 왕족의 금관 십여 점 중 여섯 점이 신라의 왕릉에서 출토되었을 정도로 금을 사랑하는 나라였다.
금은 유목민이 화폐와 같이 숭상하는 금속이었다. 지역을 끊임없이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금만큼 작은 단위로 큰 가치를 발휘하는 금속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가에서 화폐를 제작해 그 가치를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전에는 절대적 가치를 인정할만한 교환수단으로 금만큼 희소가치를 갖는 것이 없다. 그에 반해 큰 이동이 불필요한 농경 중심의 사회는 일찌감치 화폐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중국은 금보다는 옥 같은 사치품을 가치 수단으로 소장했다 한다.
또한 신라 왕릉의 구조는 나무관을 덮은 뒤 엄청난 양의 돌로 무덤을 쌓았는데 북방 흉노족의 무덤과 같은 구조다. 그리고 북방유목 민족의 토템은 새였기에 새의 모습을 한 장식이 많았는데 신라의 금관에도 새 모양의 장식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볼 때 우리는 한반도에 정착한 흉노족의 피가 남아있는 민족일지도 모르겠다.
흉노족의 전성기에 중국 땅의 한나라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며 살다 그들의 내분으로 힘이 분산된 틈을 타 때마침 국력이 강해진 7대 왕 한무제에 이르러 흉노토벌을 시작했는데, 내전으로 힘이 약해진 흉노족은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게르만족을 밀어내고, 밀려난 게르만은 동로마와 서로마를 공격하게 되면서 로마제국은 큰 혼란에 빠진다.
찢어진 눈매에 키 작은 기마병들이 파죽지세로 로마까지 쳐들어오게 되면서 유럽은 마치 외계인에게 침공이라도 받은 양 속수무책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다행히 로마 교황 레오 1세와 흉노의 대장이 만나 협상을 했는데 조건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이 협상 덕에 동양에서 온 외계인이 순순히 물러가면서 거의 함락되었던 서로마는 아슬아슬하게 몰락을 면했다.
서로마를 정복 직전까지 몰고 간 장본인은 ‘아틸라’로 불리던 흉노족의 왕이었다. 흉노를 유럽에서는 훈족이라고 불렀다. 흉노족의 압박에 밀려 넘어온 반달족마저 워낙 흉포하고 잔인해서 지금도 영어에 ‘Vandalism(공공기물 파손)’이라는 말이 남아있을 정도다.
결국 반달족은 서쪽으로 가다가다 서고트족에 밀려 이베리아반도(현, 스페인 및 포르투갈)를 거쳐 아프리카 북부지방에 정착해 끊임없이 서로마를 괴롭혔다. 한편 최강 전투력의 훈족 왕 아틸라가 급사하면서 그동안 로마와 훈족의 세력에 눌려 변방 야만족의 위치에 있던 동고트족은 전성기를 지난 로마제국의 약화를 틈타 서로마제국(현 이탈리아 지방)을 멸망시키고 유럽의 지배자로 올라서고 다른 게르만 고트족 역시 전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외세의 침입으로 국가를 이루지 못하던 시기에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작품들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작곡가였고 결국 이탈리아 독립과 더불어 정치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페라 <아틸라(1846)> 중 흉노의 침략에 맥없이 굴복하며 협정을 맺으려는 황제에 반해 끝까지 맞서 로마를 지키는 장군 에치오(Ezio)의 모습과 아버지를 죽인 원수 아틸라를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는 강한 의지의 여주인공 오다벨라의 모습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이탈리아의 독립(1861,입헌군주제)은 여러 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베르디 생존 시기에 이루어졌을 정도로 최근의 일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게르만족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탈리아 국민의 열망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이어왔고 지난 수십 년은 국지전을 제외하고는 역사 이래 유례없이 긴 평화의 시기였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 세대의 대부분이 겪어보지 못한 전쟁의 충격이 전 세계를 경제적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러시아가 끊어버린 가스와 기름 정도는 사우디를 통해 얼추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미국의 경제와 군사 우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이다.
얼마 못 가 끝날 것 같던 전쟁은 벌써 두 달째 지속되며 두 국가 모두에 큰 내상을 남기고 있다. 강대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각각의 나라들은 제 코가 석 자라 둘러대면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눈치 게임에 들어갔다. 이번 전쟁을 통해 앞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듯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고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의 조력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1950년 6월 25일처럼 세계 각국에서 지원군을 보내줄지 확신할 수 없다.
국가를 지키는 힘은 결국 국력에서 나오는데 지금 우리는 충분히 자신을 지켜낼 만한 힘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수 분 안에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것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또는 미국 히어로물 속 수퍼맨에게나 가능한 허황된 이야기라는 걸 누구라도 알 것이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공격에 일이 터지고 나서 방어에 익숙한 우리는 현실을 피해 타조나 꿩처럼 땅속에 머리를 묻고 있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때 훈족이라 불리며 세계의 최강자로 지축을 뒤흔들었던 그 힘의 DNA가 신라를 거쳐 어쩌면 우리 속에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그동안 어떻게 이 작은 나라가 스스로를 지키고 지금까지 왔는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자.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통해 발전한 민족이 아닌가.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흉노를 훈이라고 부른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