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수십 년 동안 그림에 품었던 연모의 감정이 어느덧 저로 하여금 미술관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였습니다. 혼자만의 기호와 취미가 40년이라는 세월의 큰 물줄기를 타고 마침내 오늘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과 함께 미술이 가진 생명력을 나누며, 문화 백년대계를 염원합니다.”
서울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Fear or Love》라는 제목으로 기념전시를 열었다. 서울미술관은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의 수집미술품으로 2012년 종로구 부암동에 설립했다. 개관 후 50여 개가 넘는 기획 전시를 통해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기록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매회 전시마다 개인의 수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수준 높은 작품들과 독창적인 전시구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개관 10주년 기념전 역시 미술애호가로서 안 회장의 미술품에 대한 감성적 소회를 제목에 담아 더욱 친근하고 애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미술은 저에게 인생에는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일상이 실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지를, 내 주위 사람과 그들의 삶이 알고 보면 더없이 여리고 외롭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비로소 저는 미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약 800평의 전시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에는 한국 근현대 미술계 거장 31명의 주요 작품 140점이 집대성되었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됐는데, 우선 1부 [그리다]에선 구상부터 추상, 극사실회화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다양한 회화형식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그 중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화가 이중섭과 박수근의 동행이 설레게 한다. 이중섭의 시그니처 <황소>(1953)를 비롯해,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한 박수근의 대작 <우물가(집)>(1953)이 주인공이다. 특히 한국 미술사에서 최초로 100억 원의 신화를 쓴 김환기 화백의 ‘환기블루의 마스터피스’라 불릴 만한 대작 <십만 개의 점 04-VI-73 #316>(1973)이 처음 공개된다.
“미술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에는 감성, 자연의 메시지, 삶의 철학과 같은 진지한 물음들이 놓여 있습니다. 미술이 저에게 인류애, 생명에 대한 존경, 창조의 이해를 교육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저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2부 [바라보다]에선 일명 세계무대에서 ‘K-아트’의 위상을 드높인 ‘단색화’ 관련 작가들의 대표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100호부터 300호에 이르는 대작들이 주인공이다. 평소 만나보기 힘들던 대형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을 왜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잠재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도 300호 이상의 초대형 걸작들을 통해 예술가들의 숭고한 신념과 정신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의 메아리>는 앞으로 나아갈 서울미술관의 10년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김환기 화백은 아침이 밝으면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붓을 드는 심경은 몸소 체험하지 않고는 모를 일이지요. 서울미술관을 설립하고 저의 지난 10년도 기쁨과 두려움의 반복이었습니다. 미술관에 와서 행복해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보면 한없이 기쁘다가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무게감에 짓눌릴 때도 있었지요.”
위의 글처럼 이번 서울미술관 10주년 기념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안병광 회장이 작품 수집 과정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개인 감상을 최초 공개한 부분이다. 일반 공공 미술관과 다른 점은 개인이 어떤 마음으로 힘겨운 과정을 거쳐 작품을 모아 보존하게 됐는지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수집가의 솔직 담백한 고백은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녔다.
안 회장의 남다른 신념이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선한 영향을 전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이며,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石坡亭)’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