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가방끈 긴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변화에 남들보다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한다. 배고파 뭐라도 배달시키려면 배달 앱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해졌다. 전화하면 앱으로 주문하시라고 안내한다. 앱을 설치하고 배달시키다 보면 쿠폰이 날라오곤 해서 좋아라 주문하다가 갑자기 쿠폰 살포가 끝나면 쿠폰 없는 주문은 왠지 손해 본 것 같아 열심히 2천 원짜리 쿠폰을 찾아 다른 경쟁 배달 앱들까지 여러 개 설치해가며 쿠폰을 찾아 삼만 리 하느라 식사 시간이 지나버리기도 한다.
쿠폰을 찾기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하니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편리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장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무척이나 빨리 적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업에 뛰어들어 큰 이익을 현실화하는 사람들도 드물게 존재한다. 정보통신 시장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개인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부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대충 주위를 둘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는 공부를 많이 해서 자신의 부가가치를 늘리면 시간당 급여가 늘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보다 숙련자가 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시간당 급여가 늘어난다. 나 말고 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시간당 급여가 늘어난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머리도 좋아야 한다. 기술적으로 달인이 되려면 타고난 손재주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뭐라도 독점하려면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모두 머리가 좋거나 조기 교육이 필요하고 때론 자본이 받쳐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벌려면 돈이 필요하고 재능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그 어떤 한 가지도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향해 자신들의 운을 걸기도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아주 가끔 천운의 사례가 발생한다. 기금 마련을 위해 국가가 발행하는 복권이 그렇다. 주식시장에서 매일 상한가를 찍으며 한 달 만에 10배가 올랐다는 주식 종목이 소개되고 막차라도 타보려는 광풍이 불 때 어쩌다 부자가 되기도 한다.
요즘 갑자기 이차전지주가 그렇고 초전도체 관련주가 그렇다. 피자 한 조각도 살 수 없었던 비트코인이 어느 날인가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을 넘어 몇천만 원을 찍고는 억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비트코인은 너무 올라 틀렸으니 값이 낮은 알트코인이라도 사기 위해 또다시 모아두었던 적금을 깨고 심지어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모두 제로섬게임이라서 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크게 잃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선 카지노에 가보면 오만 원권 현금다발을 테이블에 던지는 사람들 중 거의 노숙자 차림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뭘 맡기고 오만 원권 돈다발을 저렇게 많이 가져왔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지적으로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도 노동의 가치 이상의 수입을 원하고 어딘가에 투자한다. 그래야 노후에 남들 다 간다는 해외여행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페라 작곡가 중 최고의 투자자를 찾아보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작곡가가 헨델이다. 헨델은 오페라의 불모지 영국으로 넘어가 여러 오페라를 작곡하고 연주곡을 만들어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영국의 늦은 오페라 사랑에 그만 성악가들의 출연료가 유럽에서 가장 높아졌다. 음악가 인플레이션이 대단했는데, 그 유명한 파리넬리까지 영국 런던공연에서 매일 밤 집 한 채 정도의 출연료를 벌어갔다. 요즘 유럽 축구 선수들의 연봉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또한, 유명 아이돌이나 트로트 열풍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가수들의 출연료를 얼핏 들어보면 집 한 채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헨델 시대의 오페라 열병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돈이 된다는 소문은 당연히 경쟁자들을 런던으로 불러들였고 점점 오페라 제작비가 올라가 공연을 올려도 손해를 보는 적자구조를 만들며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국 오페라의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 헨델에게 천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주식이었다. 남미 사업권을 독점하는 남해주식회사의 주식 광풍 속에서 100배 수익을 올린 헨델은 그 돈으로 왕립음악원을 세우고 오페라를 제작하면서 남아도는 영국 귀족들의 잉여자금까지 투자로 끌어들이면서 제2의 오페라 열풍을 만들어 냈다. 물론 고질적인 예술가들의 스캔들과 제작비 상승의 문제를 뛰어넘지 못한 상태에서 강력한 경쟁상대인 거지 오페라(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제작한 뮤지컬의 시초)가 등장하면서 공연 콘텐츠 시장의 왕좌를 내주게 되었다.
주식시장에서 잃은 사람은 있어도 번 사람은 못 봤다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 아이작 뉴턴은 물론이고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디포 역시 남해주식으로 투자 전액을 잃었다고 전해지는데 헨델은 하한가에 사서 상한가에 팔았다고 한다. 헨델의 주식투자 성공 뒤에 뭔가 있는데 기록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필자의 생각에는 헨델 주변 많은 귀족과 왕족들에게서 얻는 고급 정보를 손에 넣은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는 영국의 남해주식 버블 말고도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등 초기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과도한 선물옵션 판매 방식을 통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결국 작은 소문만으로도 쉽게 버블이 붕괴하는 시나리오를 가진 상품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런 합법적인 도박 시장의 버블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사고를 방지할 자본시장 관리법들이 현재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규제는 사고가 나고 나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앞서가는 투기자본시장의 창조력을 따라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금도 코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 세상에 던져지면서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마치 가상세계의 게임머니 같은 존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갑론을박 중이다. 어…어… 하는 사이 세금을 안 내도 되는 현금 백만장자들이 실제로 탄생하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동시에 필수재인 집값마저 너무 올라 젊은 세대들에게는 주어진 선택지는 주식, 코인 등 영끌 투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님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십 대 대부분 코인 지갑을 갖고 있다. MZ세대의 투자는 적금이나 정기예금, 부동산이 아니다. 터지기 전까지는 규제로도 막을 수 없는 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금을 부과하자고 공론화하려고 해도 이미 소유자가 너무 많아 어렵다. 얼마 전 코인 부자 모 국회의원의 사례를 보더라도 법을 만드는 게 얼마나 험난할지 엿볼 수 있다.
주식과 코인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 정말 운이 좋은 사람만이 잘살게 된다면 누가 공부하고 노력하고 재능을 계발하는 데 시간을 쏟을 것인가라는 걱정도 된다. 세상과 담쌓고 사는 북한은 돈 번 곳이 없어서 과거에는 위조지폐와 마약 거래하다가 지금은 최첨단 기술로 코인거래소 서버 해킹이 주요 수입원 중 하나라고 하니 아이러니다.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는 투자를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보험도 드는 것이고 0.1% 이자 더 주는 은행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다. 투자는 헨델처럼 자신의 공연 비즈니스를 하려는 방편으로 사용한다면 자본이 선순환되겠지만 단지 인생역전을 위한 방편으로 몰방한다면, 그저 유흥비로 탕진해 버렸다는 사회면 기사에 나오는 좀도둑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싶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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