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우리는 말하지 못했어도, 바람은 말해왔다.” 제주에서 있었던 4·3에 대해, 한 제주 토박이 도민이 한 말이다. 숨죽여 살아온 세월의 한과, 쉬쉬하면서도 기어이 말하여 전하고자 했던 심정이 느껴져서 그 짧은 문장이 잊히지 않았다.
바람이란 단어의 어원에는 ‘말’과 ‘소리’의 뜻이 담겨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지역민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격화되어 온 바람이, 우주의 숨인 바람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그 비극을 모른 채 했을 리가 없다. 미군정과 정부의 군사작전으로 인해 7년 7개월 동안 3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던, 섬 전체를 피로 물들인 제주4·3을.
2019년 봄부터 4·3사건의 현장이었던 학살터, 희생자들이 수장된 바다, 생존자, 굿, 신당 등을 찾아다녔다. 오늘날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아름다운 관광지로 각광받는 제주는, 1만8천 명의 신이 있는 신화와 무속의 섬이기도 하다. 입 밖으로 아무도 4·3을 말하지 못할 때 비밀리에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한 것은 섬의 심방들과 자신들이었다. 바다와 나무와 숲과 바위가 모두 기도처이자 위무의 공간일 때, 바람이 그들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바람의 말>은 중첩된 제주 섬의 역사를 새롭게 이미지화해 그 공명을 공유하고자 한 작업이다. 대형 4x5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해 촬영한 뒤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한 현장의 나무나 바위 위에 사진을 밀어 이미지에 파열을 가했다. 이 과정은 한 장의 사진으로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역사의 불완전성, 희미해질수록 붙들어 두어야 하는 기억의 소명에 대한 사진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사진들이 어떤 진상을 드러내고, 어떤 진실로 전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진술케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우리는 말하지 못했어도 바람은 말해왔듯이, 이 사진들이 한줄기 ‘바람의 말’이기를 바란다.
사진·글 | 성남훈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Icart Photo Ecole de Paris)’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 프랑스 사진통신사 ‘라포(Rapho)’의 소속 사진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전주대학교 사진학과 객원교수와 온빛다큐멘터리 회장을 역임하였고, 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1992년 프랑스 르 살롱 최우수사진상, 2004년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 2006년 한미사진상, 동강사진상, 1994/1999/2009년 네덜란드 월드프레스포토상, 2017년 일우사진상, 2020년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상 파이널리스트를 수상하였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올림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예송미술관, 영월사진박물관, 타슈켄트국립사진센터, 국가인권위원회, 스페이스22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