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에릭 사티(Erik Satie)(1866~1925)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음악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작곡가로, 인상주의와 현대음악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도 기존의 음악적 규범을 비틀고 풍자한 인물이다. 그는 정규 음악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나, 파리 음악원의 교육 체계에 맞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다. 정통 화성학이나 대위법 학습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에릭 사티는 음악원에서 무려 두 차례 제적을 당했는데, 이는 그의 음악적 성향과 교육 제도의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발전시켰다. 음악원에서의 부정적 평가가 오히려 “나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한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생전에는 괴짜로 불렸으나 사후에는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 존 케이지(John Cage)(1912~1992) 등 여러 작곡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사티는 ‘가구 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릭 사티의 가구 음악은 1917년경 처음 구상되고 1920년대 초에 실제 연주된 독창적 개념의 음악으로, 말 그대로 “가구처럼 존재하는 음악”이다. 이는 음악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를 채우는 배경 요소로 사용해야 한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음악은 무대에서 청중이 집중하여 감상하는 예술로 여겨졌지만, 사티는 이에 도전하여 음악을 생활 공간 속 배경으로 위치시키고자 했다. 즉, 가구 음악은 사람들이 감상하기 위해 귀 기울이는 대상이 아니라, 의자나 벽지처럼 공간을 채우되 의식적으로 주목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에릭 사티는 1920년대 초에 「Pour un buffet」(식당용), 「Pour une galerie」(전시회장용) 등을 실제 로비나 연회장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에릭 사티는 음악사에서 독창적 작곡가일 뿐 아니라, 기이하고 집착적인 행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을 통해 일정한 강박적 습관을 유지했는데, 이를 단순한 기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 세계와 직결된 부분이 많다. 그는 극도의 단순성과 반복성을 삶 속에서 실천했다고 하는데, 사티의 「벡사시옹(Vexations)」(1893)과 같은 작품은 반복과 단순화의 미학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벡사시옹(Vexations)」은 ‘괴롭힘, 번민’을 뜻하는데, 이는 단순히 음악적 감정을 표현하는 차원을 넘어, 곡 자체가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일종의 수행적 시험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해당 악보는 한 쪽이고 내용도 짧은 모티프와 불협화음적 화음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는 “이 모티프를 840번 반복하라”라는 지시를 악보 하단에 남겼다. 실제 840번을 반복하면 연주 시간이 18시간이 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지시는 음악계에 전례 없는 발상이었다. 이후 존 케이지가 20세기에 이를 실제로 연주하며 사티의 실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사례는 지금까지 유명하다. 케이지는 “이 모티프를 840번 반복하라”를 실제 수행해야 한다고 해석했으나, 한 명의 연주자가 곡을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케이지는 10여 명의 피아니스트를 조직하여 연주를 수행하였다. 당시 청중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지루함과 피로를 견디지 못해 중도에 퇴장했고, 남은 청중도 끝까지 버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몇몇 평론가들은 이를 “지루함 자체가 예술”이라는 평을 하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티가 “이 모티프를 840번 반복하라”라는 행위를 직장에서 실제 시켜서 누군가가 이를 수행해야 한다면, 이러한 사실상 불가능한 업무 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을까?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한다. 이는 근로자의 근로의욕 감소 및 조직 분위기 저해에까지 이어져 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에도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업무 환경에서 안전하게 근무하고,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신속한 조치를 통해 조속히 원상 회복할 수 있도록 2019년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를 마련하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원칙과 사용자의 조사·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사용자가 신고자 및 피해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처벌받도록 하였다.
불가능한 업무를 부여하는 행위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지시의 전형적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업무 지시는 사용자의 정당한 권한에 속하나, 그 한계는 ‘업무상 적정 범위’라는 기준에 의해 제한된다. 즉, 회사의 목적 달성과 근로계약의 범주 내에서 합리적으로 요구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수행이 불가능하거나 달성하기 위해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지시는 이미 업무 지시권의 남용에 해당하며, 「근로기준법」제76조의2에서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불가능한 업무 지시는 단순한 과중 업무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근로자에게 실질적 고통을 야기하는 부당한 지시라는 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조직 내 건전한 근로환경을 해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법적·제도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조직문화 차원에서도 엄격히 차단되어야 할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는 업무량을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반복적으로 요구하거나, 근로자의 전문성과 무관한 고도의 기술적 과제를 무리하게 부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함으로써 근로자에게 무력감과 자존감 상실을 유도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는 자신의 직무능력 부족이 아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과제 때문에 평가와 인격적 존중에서 손상을 입게 되고, 이는 심리적 압박과 근무환경 악화로 이어진다.
다만, 아직 어떠한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로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지에 관해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고용노동부는 업무 범위 내로 볼 수 있는 ‘업무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근로자가 그동안 전자파일 형태로 관리해 오던 소송 관련 서류를 모두 문서로 출력해 정리할 것을 지시하는 것은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근로자의 업무 특성상 불필요한 것이거나 수행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고, 근로자의 정당한 업무의 수행을 어렵게 하는 등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라고 판단한 법원의 최근 판결도 있다.
자발적 선택과 실험정신 속에서 의미가 그 의미가 있다면 자유로운 예술적 실험이 될 수 있을 것이지만, 연주자에게 예술적 이유 없이, 직장에서 계약을 빌미로 ‘840번 연주’를 강제한다면 법원은 “불가능한 업무 부여”로 보고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공산도 크지 않을까?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법학(J.D.), 기술경영학(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