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1746~1828)는 스페인 아라곤(Aragon) 지방 푸엔데토도스(Fuendetodos)에서 태어나 자란 화가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스페인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고야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사라고사(Zaragoza)에서 도메니코 바이유((Domenico Bayeu)(1740~1808) 등에게 그림을 배웠다. 1770년대 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 미술과 바로크(Baroque) 시기 미술을 접했고, 귀국 후에는 1786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Carlos Ⅲ)(1716~1759)의 궁정화가로 임명되었다. 이후 후계자 국왕 카를로스 4세(Carlos Ⅳ)(1748~1819) 시대에는 초상화와 궁정 장식화를 다수 제작하며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고야의 삶은 개인적 시련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793년경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청력을 잃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는 급격히 변모했다. 이전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궁정화에서 벗어나, 사회적 부조리와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담은 풍자화와 판화로 눈을 돌렸다. 고야가 1799년에 발표한 80점의 판화 연작인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는 스페인 사회의 미신, 부패, 종교적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으로, 귀족층의 반발, 종교재판소의 압력 가능성 때문에 고야는 해당 작품의 판매를 서둘러 중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작품과 동판은 국왕 카를로스 4세에게 헌정하며, 왕실의 보호 아래 위험을 피했다. 이 과정은 고야가 직접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자기 검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옷을 입은 마하(La maja vestida)>(1800~1805년 추정)은 고야가 그린 유화로, 스페인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란이 많은 초상화다. <옷을 입은 마하>는 19세기 마드리드 하층민 중 세련되고 대담한 여성상을 그린 작품으로, 고야는 이를 통해 당대 여성의 자부심과 개성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대목은 고야가 <누드 마하(La maja desnuda)>라는 작품을 1797~1800년경에 먼저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누드 마하>의 모델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시선을 정면으로 보내고 있으며, 이상화된 신체나 신화적 장치 없이 완전한 나체로 묘사된다. 이러한 직접적인 표현은 당대 유럽 미술에서 드물었고, 종교적·도덕적 규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해당 작품은 당시 스페인 총리 마누엘 고도이(Manuel Godoy)(1767~1851)의 비밀 서재에 <옷을 입은 마하>와 함께 보관되다가, 1815년 스페인 종교재판소에 의해 외설 혐의로 압수되었는데, 고야는 해당 작품의 제작 경위를 해명하기 위해 소환되기도 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이 고도이가 스스로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소위 ‘커버 버전’까지 요청하여 두 작품을 모두 소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두 작품은 크기와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황에 따라 두 그림을 바꿔 걸 수 있었다는 것이 근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열은 무엇일까? 검열은 그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21조 제2항을 통해 이러한 검열은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검열이 허용되는 국가의 경우에는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검열은 앞서 고야가 스스로 작품 판매를 중단한 것과 같이,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표현의 내용과 수위 등에 대해 자기검열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부작용도 가져온다.
물론, 검열금지라는 것이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금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사표현의 발표여부가 오로지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만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전검열의 요건은 일반적으로 ①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②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③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로 정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과거 상영등급분류보류제도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의 상영 이전에 영화의 상영등급을 분류함에 있어 해당 영화가 일정한 기준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를 일정기간 보류하는 것이다. 영화의 상영 이전에 영화의 내용을 검토하여 당해 영화의 내용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그 상영을 금지함으로써, 폭력ㆍ음란의 과도한 묘사로부터 청소년 및 공서양속을 보호하고, 기타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를 위해 대중성ㆍ오락성ㆍ직접성이 그 특징인 영화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등급 분류가 일정 기간 보류되면 상영등급을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그 기간 동안 개봉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등급분류보류의 횟수제한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등급분류보류기간의 상한선이 없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상영등급분류보류제도는 3개월 내의 기간을 정하여 등급분류를 보류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3개월 내의 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영화제작자가 자진해서 문제로 지적된 내용을 삭제 내지 수정하지 않는 한 무한정 등급분류가 보류될 수 있었다.
이러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상 상영등급분류보류제도는 ①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서는 그 상영 이전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을 분류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에 영화 촬영본을 제출해야 하고, ②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영상물상영등급을 분류받지 못한 영화는 등급이 없기 때문에 상영이 불가능하며, ③ 만약 상영등급의 분류를 받지 않은 채 영화 상영을 강행하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뿐만 아니라 상영등급을 분류받지 아니한 영화가 상영되는 경우 정부는 상영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러한 명령을 위반하면 형사 처벌까지 부과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등급분류보류제도가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상 상영등급분류보류제도는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법학(J.D.), 기술경영학(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