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라면 단연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을 꼽는다. 그렇다면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는 누구일까? 단연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이다. 그는 프랑스파리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름이 프랑스 식으로 Alphonse Mucha(알퐁스 뮈샤)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미술서적이나 포스터 등과 같은 출판물 형태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프라하에서 그의 작품을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성 비투스 대성당이다. 대성당 내부 북쪽 창문에는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슬라비아 은행의 후원으로 제작한 것으로, 세 개의 창문에서 좌우의 창에는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의 생애가 묘사 되어있다. 그리스의 데살로니카 출신의 이 두 형제 성인은 9세기에 슬라브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뿐 아니라 문자도 전파했는데 이것이 발전한 것이 바로 오늘날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에서 사용하는 알파벳인 키릴 문자이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좌우의 창문은 이 두 성인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다.
가운데 창문은 세 장면으로 나누어지는데, 윗부분은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가 슬라브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 장면이고, 중간 부분은 어린 바츨라프와 그의 할머니 루드밀라가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럼 바츨라프는 어떤 인물인가?
서기 907년 그가 태어났을 당시, 보헤미아에는 기독교가 별로 전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할머니를 통해서 기독교식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나중에 보헤미아의 통치자가 된 다음 그는 독일교회의 도움으로 나라를 기독교화하는 데 힘썼다. 그런데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고 이교도 신앙을 고집하던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반대파 귀족들과 손잡고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를 죽이려고 수 차례 기회만 엿보던 동생은 마침내 자객을 보내어 그를 암살하고 말았다. 935년 9월 28일의 일이었다.
바츨라프는 죽는 순간에 “주여, 당신의 손에 나의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외쳤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져 체코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그의 시신은 성 비투스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 한편 영어권에서는 그를 웬스슬라스(Wenceslas)라고 하는데 영어권의 크리스마스 캐럴 <선한 왕 웬스슬라스>(Good King Wenceslas)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 바츨라프와 그의 할머니 아랫부분에는 알폰스 무하의 다른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젊은 두 여인이 있다. 다름 아닌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의인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종교적인 것과 민족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림에서 보듯 알폰스 무하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화풍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인생 역전의 드라마였다.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프라하 미술학교에 지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적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장식미술가로 일하다가 독일 뮌헨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활동하게 되는데 1894년 12월 우연한 기회에 당시 유명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의뢰를 받고 제작한 연극 ‘지스몽다’ 공연 포스터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하루아침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어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그의 작품들이 선보인 후 무하 스타일의 그림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도 널리 퍼졌다.
하지만 무하는 세속적 유명세를 뒤로하고 1910년 고국에 돌아온 다음에는 슬라브 민족주의 색채를 띤 예술성이 높은 회화에 집중하게 된다. 이리하여 20개의 대작으로 이루어진 <슬라브 서사시>를 1912년에 시작하여 1926년에 완성했는데 그 사이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했다.
이어서 1931년에는 바로 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완성했다. 전통적인 종교적 도상에 아르누보적 감수성을 불어넣은 이 작품은,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을 하나의 빛으로 승화시켰다. 빛이 유리 조각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무하가 평생 추구한 ‘신성한 조화’가 성 비투스 대성당 내부를 물들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1939년 체코를 침공한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지 몇 달 후인 7월 14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모든 체코사람들의 애도 속에 그는 스메타나, 드보르작 등 체코의 국가유공자들이 묻힌 비셰흐라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