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발 인쇄판화집 '몰랑몰랑' 표지 이미지
이혁발 인쇄판화집 '몰랑몰랑' 표지 이미지

[아츠앤컬쳐] 한국의 대표적인 행위예술가이자 이론가인 이혁발 작가가 아주 흥미로운 책 두 권을 출간했다. 그는 현장 예술인으로서는 드물게 『누가 그림 속의 즐거움을 훔쳤을까』, 『행위미술 이야기』 등을 집필하며 미학적 담론을 생산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선보인 『몰랑몰랑』과 『물컹물컹』은 단순한 도록을 넘어,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육감도’라는 작가관을 인쇄와 사진이라는 매체로 확장한 독창적인 프로젝트다.

이혁발 사진판화집 '물컹물컹' 표지 이미지
이혁발 사진판화집 '물컹물컹' 표지 이미지

먼저 드로잉 인쇄판화 작품집인 『몰랑몰랑』은 회화와 설치, 행위미술을 넘나들며 제작한 370점의 드로잉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쇄판화’라는 작가 고유의 개념이다. 작가는 인쇄 역시 ‘판’에 의해 찍혀 나온다는 점에 주목하여, 통상의 액자 속에 갇힌 그림을 ‘책’이라는 보관이 가능한 형태로 치환했다. 이는 1993년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미지 채집』의 연장선으로, 작품이 벽에만 걸리는 권위에서 벗어나 책장에 꽂히는 일상성을 획득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질문이 담겨있다.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고급지인 ‘울트라 화이트 랑데부’지를 사용하고 196부 한정판으로 제작했으며, 각권의 내지마다 직접 넘버링과 드로잉을 더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

이혁발 행위예술 '거룩한 구멍' 장면(17회 이혁발 개인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2023.03.17)
이혁발 행위예술 '거룩한 구멍' 장면(17회 이혁발 개인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2023.03.17)

함께 출간된 사진 판화집 『물컹물컹』 역시 같은 맥락의 실험이다. 이 책에서 가장 파격적이고도 숭고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표지에 실린 ‘대변 사진’ 작품이다. 작가는 2021년 11월 28일부터 현재까지 4년째 매일 자신의 ‘똥’ 사진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70개의 사진이 한 세트를 이루는 17점의 시리즈로 구성해 냈다. 단순히 충격을 주려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거룩한 순환>, <거룩한 차이>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생리적 행위에서 시간성과 존재의 다름을 수용하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기계적 인쇄 위에 작가가 직접 페인트마커로 드로잉을 추가한 이 사진집은 기계와 인간의 손길이 교차하는 지점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혁발 행위예술 '인생-VIVA! 예술路'(광주 예술의 거리, 2022.06.14)
이혁발 행위예술 '인생-VIVA! 예술路'(광주 예술의 거리, 2022.06.14)

​이혁발은 평생 육체와 성(性)을 화두로 삼아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인 세상의 허상을 꼬집어 온 ‘전방위 문화게릴라’다. 1993년 ‘가벼운 미술’을 선언하며 도색잡지를 팝아트적으로 합성하거나, 한국 최초의 여장남자 모델 ‘섹시미미’를 제안하고, 2005년 자신의 정액을 병에 담아 전시했던 《정액전》 등의 에피소드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인간의 생명성과 심미관의 해법을 찾아왔는지를 증명해 준다.

이혁발 행위예술 '역지사지'(부산국제행위예술제, 이기대 해안산책로, 2016.09.23)
이혁발 행위예술 '역지사지'(부산국제행위예술제, 이기대 해안산책로, 2016.09.23)

이번 두 권의 동시 출간은 이혁발의 실험과 도전이 여전히 유효하며, 그의 예술적 사유가 얼마나 깊은 층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의 ‘몰랑하고 물컹한’ 프로포즈는 디지털 시대에 물질성을 지닌 책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관객을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감각의 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혁발(1963~) 작가는 경북 영양에서 출생했고,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3년간 큐레이터를 지낸 후 작가 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30년 넘는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2006년 안동으로 내려와 자연이 함께 하는 작업 공간을 꾸미고 산다. 그동안 개인전은 18회, 120여 회의 기획단체전, 행위미술 90여 회를 하였다. 행위미술 관련 작품집은 『섹시미미』(이소북, 2003), 저서는 『한국의 행위미술가들』(다빈치 기프트, 2008), 『행위미술 이야기』(도서출판 사문난적, 2012) 등이 있다. 현재 ‘예술연구소 육감도’라는 이름으로 행위미술, 회화, 사진, 입체, 설치미술 등 다양한 창작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글 ㅣ 김윤섭

미술사 박사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