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이 드디어 8월 말 한국 극장 개봉했다. 위축된 국내 극장가를 되살릴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놀란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 이번 작품을 위해 특별히 아이맥스 카메라에 플레이백 시스템과 80mm 매크로 렌즈를 개발했다고 한다. 아이맥스 시각효과를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이기에, 이전 작품들도 아이맥스 관에서 볼 것을 강요받곤 했다. 덕분에 그의 영화를 상영하는 아이맥스 관들은 항상 매진이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개봉 첫 주 아이맥스 관들은 광속 매진 중이다. 역시 왕의 귀환답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아직 <테넷>을 보지 못했다. (다음번 무비인사이트는 무조건 <테넷>을 리뷰할 예정이다.) 이미 시사회를 보고 온 지인들에 따르면 N차 관람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놀란 감독은 <인셉션>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스파이 영화라고 했다. 영화 속 서사의 흐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섞어 구성하거나, 시작과 끝이 거꾸로 시간이 흐르고 순환 참조되는 서사는 이미 <덩케르크>와 <메멘토>에서 경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셉션>의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파이들의 활동을 <덩케르크>나 <메멘토>처럼 서사하고, 그 시간의 인과가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와 미래에 서로 영향을 주는 이야기라는 뜻인가? 너무 보고 싶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시간은 놀란 감독의 많은 영화들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재료이다. <테넷>을 기다리며 예습 차원에서 <인셉션을> 복습했다. 그는 이미 <메멘토>에서 편집을 통해 관객들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간접 경험하도록 만든 바 있다. <인셉션>을 보면서 관객들은 스스로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의심하게 된다. 이 영화는 꿈속에서의 두뇌 속도가 20배로 빨라지기 때문에 꿈속의 시간은현실 시간의 20배라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만약 속에서 또 꿈을 꾸게 된다면 다시 그의 시간은 400배 천천히 가게 될 것이다. 이
렇게 몇 단계만 꿈속의 꿈으로 들어가게 되면 어느 순간 영원에 가까운 시간 속에 갇히게 된다. 또 하나 꿈속의 꿈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더 무의식에 가깝게 접근한다. 무의식 속에 남겨진 생각은 실제 세상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단순히 이러한 설정을 영화 자체의 플롯뿐 아니라 형식에도 적용하여 실제 관객들의 무의식을 조정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인셉션>의 복잡한 스토리와 별개로 관객의 무의식 속에서 다가가기 위해 놀란 감독이 사용한 도구는 ‘음악’이
다. 이 영화 속에서 꿈을 깰 때 사용하는 신호로서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 ‘Non, Je Ne Regrette Rien’(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사용되고, 이 음악은 영화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는 공식 OST에 담겨 있지 않다. 대신 음악감독 한스 짐머는 이 노래를 길게 늘어뜨려 <인셉션>의 스코어로 사용했다.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에디뜨 피아프의 목소리까지 길게 늘어진 채 노골적으로 이제 꿈을 깨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알려준다.


에디뜨 피아프는 ‘Non, Je Ne Regrette Rien’ 노래에서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좋았던 나빴던 기억도 과거일 뿐이고, 그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한다. 때론 과거로 돌아가길 기원하고,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곤 한다. 이 모든 상상은 결국 꿈일 뿐이다. 깨어나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꿈속에 얽매여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완벽하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주제가가 있을까 싶다. 물론 가사를 몰라도 기상곡으로 최고의 음악이기도 하다.

글 | 도영진
영화 칼럼니스트, 베인앤드컴퍼니 상무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한국 및 아시아 대표 역임
CJ E&M 전략기획담당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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