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매우 개인적인 취향이라 쉽게 권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있다. 이런 독특한 개인 취향을 설명하는 용어들 중에는 잔인한 장면, 극도의 긴장감, 블랙 유머, 뒤틀린 판타지,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비주얼 등이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독특한 세계관과 비주얼 감각을 가진 나의 최애 감독 중 하나이다. 단순히 잔인하고 뒤틀린 감각적 쾌감을 이끌어내는 역량을 가진 감독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기예르모 감독이 그중에서도 월등한 것은 그의 기괴한 판타지가 현실의 비극과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예르모 감독의 찐팬이라면 그의 데뷔작인 <크로노스>, <악마의 등뼈>와 더불어 2006년에 찍은 대표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를 모두 섭렵했어야 한다. 잔혹 동화 같은 스토리, 무섭지만 아름다운 비주얼, 잠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연출, 갑자기 터지는 잔혹한 장면들이 주는 쾌감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취향 저격이다.

그의 할리우드 작품들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인 블록버스터들에 비하면 여전히 뒤틀린 유머와 스타일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헬보이>나 <퍼시픽 림>은 스토리를 떠나 비주얼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한다. 기예르모 감독은 확실히 비주얼적인 쾌감을 만들 줄 안다. <퍼시픽 림>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화면을 꽥 채우는 거대한 메카닉의 동작 장면이 기억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여전히 필자는 그가 스페인에서 만든 3부작을 더 좋아한다. 최근 그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또한 이들과 유사한 맥락이지만, 과거 작품들에서 보여준 투박한 비주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세 작품 모두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주인공은 아이들만큼이나 순수한 젊은 여인이다)

이 영화들 속에는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기괴한 모양의 피조물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주인공들이 싸워야 하는 ‘괴물’은 이 피조물들이 아닌 욕심으로 가득 찬 어른들이다. 기예르모 판타지가 설득력을 갖는 포인트이다. 신화나, SF나 판타지처럼 상상 속 세상을 다루는 작품일수록 현실 세상에 단단히 뿌리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판의 미로>는 1944년 스페인 내전 직후 파시스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숲에 숨어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는 시민군과 이들을 진압하려는 정부군 간의 계속된 전투로 평범한 시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인공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는 만삭의 엄마 ‘카르멘’(애리아드나 길)을 따라 새아버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가 근무하는 숲속 기지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비달 대위는 병으로 사람 얼굴을 뭉개버리고 고문을 일삼는 끔찍한 인간이다.

카르멘은 폭력적인 남편과 위험한 전쟁터에서 살기로 한 것이 자신과 딸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그녀는 오필리아에게 어른이 되면 이해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이는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결혼으로 해결책을 찾은 엄마와 달리 오필리아에게는 현실 세계에서 도망갈 방법이 없다.

오필리아가 경험하는 환상 속 세계는 징그럽고 기괴하지만 아름답다. 철이 든 어른들이라면 하지 않을 결정과 행동을 하고,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판타지 세상 속에서 모험을 하는 그녀를, 어른들은 철이 없거나 정신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내리는 결정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척하며 행동하지만, 그 또한 불완전한 자기확신일 뿐이다. 우리가 믿는 것들이 믿지 않는 것들보다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글 | 도영진
영화 칼럼니스트, 베인앤드컴퍼니 부파트너,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한국 및 아시아 대표 역임, CJ E&M 전략기획담당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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