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골프와 고전음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정적 순간에 ‘절대 정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골프 샷을 하기 직전에는 사방 100m 내외의 모든 사람들이 절대 정적을 유지해야 한다. 클래식 음악회 중 연주자 이외에는 누구도 소리를 낼 수 없다. 청중들은 생리적으로 나오는 기침도 억지로 참는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인을 흔들고 있는 팬데믹이 골프와 고전음악에서의 정적을 공연장 밖 세상까지 확장해버렸다.
골프와 고전음악에서 샷이나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 감동의 정도를 표현해왔다. 그런데 연주회가 청중이 전혀 없거나 제한된 형태로 진행되며 고전음악계가 활기를 잃고 있다. 프로골프에서도 현장에 수만 명씩 모인 관중들의 환호와 중요한 퍼트를 놓쳤을 때의 탄성 소리도 중요한 감상 요인이다.
전 세계 골프대회 중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마스터스 대회는 올해 아쉽게도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한국의 골퍼 임성재 프로가 아시아 역사상 최초, 최고 기록으로 2020년 11월 16일 미국 오거스타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2위에 오르는 대역사를 썼다. 미국 언론들은 불과 22살의 한국 청년 임성재 프로가 마스터스 데뷔 무대에서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극찬했다.
마지막 날 임 프로가 2, 3번 홀 연속 버디를 하며 기세를 올린 반면 존슨이 4, 5번 홀 연속 보기를 해 임 프로와 1타 차이로 좁혀졌을 때가 있었다. 존슨의 최대 위기였다. 이때 만약 지나간 83년간의 대회처럼 수만 명의 구름 관중들이 마스터스 골프장을 메우며 존슨의 미스샷에 아쉬움을 표현했다면? 또 임 프로의 버디 행진에 열렬한 박수 환호를 보냈더라면?
임성재 프로가 역전 우승을 하지 못한 이유는 짧은 골프 경력도 있겠지만 ‘정적’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본다. 더스틴 존슨은 대회가 끝난 후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을 졸였다(I was nervous all day).”라고 했다.
세계 랭킹 1위인 실력파 존슨은 그간 가장 앞서가다가도 고도의 긴장감 때문에 계속 우승을 놓쳐왔던 징크스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팬데믹 무관중으로 오히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스틴 존슨은 2020년 오거스타 골프대회에서 마치 연습을 하듯 편안하게 걸어 다니며 샷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마스터스가 앞으로도 3~4년 이상 계속 무관중으로 골프대회를 한다면 그때는 마스터스의 권위도, 명성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수와 환호가 없는 고전음악계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비싼 입장권을 사고 콘서트홀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무대 위의 연주가를 직접 보는 것 이외에 라이브 연주회의 독특한 분위기에 박수와 환호로 동참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1989년 세상을 떠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음악이 음반 시대를 넘어 영상 음반의 시대가 열릴 것을 예측하고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한 사람이기도 하다. 카라얀과 동시대를 살았던 라이벌,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연주 영상 녹화를 극히 싫어했던 것과 너무나 대조된다. 카라얀의 영상 음악 중에는 무관중으로 치밀하게 계획되어 녹음 녹화된 자료들이 여러 편이 있다.
출시 당시에는 이 카라얀의 무관중 음악회 자료들이 독특한 영상미와 함께 엄청 인기였다. 카메라가 나팔이 나올 땐 나팔들만을 보이게 한다든가, 팀파니를 칠 때 작은 먼지가 떠오르는 모습까지 잡아내는 클로즈업을 하는 것 등이 당시로는 흥미로운 편집 테크닉으로 보였다.
하지만 카라얀의 이러한 무관중 음악 자료들은 객석의 생동감이 생략되어 반복 감상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결국 라이브 고전음악회는 세계 최고의 연주를 즐기기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 애호가중 한 명인 줄로만 알았던 개개인들이 모두 연주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화이저 제약, 모더나 제약 등 제약회사들의 노력으로 팬데믹의 종료 희망이 보이는 가운데 절대 정적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박수와 환호가 가득 찬 콘서트홀이 그야말로 학수고대 되는 시점이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에코 에너지 대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