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거절할 용기에 대하여
[아츠앤컬쳐] 마리옹 코티야르의 열연이 돋보이는 <라 비 앙 로즈>는 샹송의 여제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의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남아있게 만드는 영화의 매력은 절대적으로 피아프의 목소리로 재생된 환상적인 샹송들에 있다. 그중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만년의 히트곡 ‘Non, je ne regrette rien’은 마치 세상에 남겨진 그녀의 마지막 외침처럼 숙연함마저 느껴지게 한다.
피아프는 가장 화려하고도 비참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거리의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버려져 아버지와 서커스단을 떠돌며 지냈고, 그가 군대에 입대하자 할머니가 운영하던 창녀촌의 쪽방에서 성장했다. 가진 것이라곤 목소리가 전부였던 그녀는 가수로서 성공의 문턱에 도달하고부터 줄곧 남성편력에 젖었고,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그녀를 배신하거나 사망하여 곁을 떠났고, 고통과 슬픔 가운데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오로지 노래뿐이었다.
피아프는 ‘노래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고, 사랑 없는 노래 또한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녀에게 노래란 삶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샹송들이 그녀의 애정 행각과 결부되어 작사되고, 불려지고, 사랑받았지만, 그녀의 전인격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비록 그것들이 더없이 진실한 감정이었다 할지라도, 그녀 자체가 완전한 성장을 멈춘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Non, je ne regrette rien’은 조금 달랐다. 이 노래를 부를 때 피아프는 마치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웃음 짓는, 비극적이지만 찬란한 의지의 여인으로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난 어떤 후회도 하지 않아. 내게 일어난 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똑같은 거야. 이미 대가를 치렀고, 씻겨졌고, 잊혀졌어. 모든 추억들을 태워버렸기에 지난 고통이나 기쁨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사랑도 모든 전율도 다 쓸어버린 채로 제로(zero)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새로운 내 인생이, 내 기쁨이 오늘 당신과 시작되니까” 작곡가 뒤몽(Charles Dumont)이 스코어를 들고 처음으로 피아프의 저택을 찾았을 때, 연이은 교통사고와 지병으로 기력이 고갈된 피아프는 냉랭하게 그를 맞았다.
그러나 곧 그가 선보인 멜로디와 작사가 보케르(Michel Vaucaire)의 가사는 그녀의 자아를 뒤흔들며 새로운 흥분으로 들끓게 했다.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12/8 박자의 도입부와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당당한 보컬 라인, 약동감 넘치는 반주부의 점진적 크레셴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인생관이 투시된 가사는 그녀에게 막강한 지지력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했다. 열정이 되살아난 피아프는 1961년, 파리 올랭피아 극장에서 4번째 콘서트를 열었는데, 특유의 트레몰로가 절묘하게 섞인 목소리는 ‘Non, je ne regrette rien’에 영감을 더하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청중의 폭발적인 환호는 그녀의 스러져가던 기운을 되살렸고, 그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의 음악 차트를 석권하며, 전 유럽과 미국 시장을 점령했다.
피아프는 ‘Non, je ne regrette rien’과 함께 재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여성상으로 거듭난 듯 보였다. 작고 왜소한 몸집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함께해준 노래 안에서 성장한 듯했고,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던 애정 결핍의 늪에서 벗어난 듯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신과의 친밀한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3년 10월, 피아프는 자신의 별장에서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파리를 비롯한 도시 곳곳을 온통 눈물에 젖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후회를 거절할 만큼의 거대한 용기를 보여주고 떠났음을.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리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