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기업가의 진정한 기적은 절대로 마술사가 보이는 한순간의 현란한 연출처럼 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둔하게, 느리게, 평범하게, 지루할 정도로 힘겨운 훈련과 피드백과 실천 끝에 온다. ‘MBO: Management By Objectives’로 대표되는 드러커의 사상은 하나의 경영이론이 아니라 ‘시간의 세례’를 거친 하나의 철학이다.
1부 사람 경영
조직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성과를 내도록 하는 곳이다. 드러커는 계몽군주를 위장된 독재자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경영자는 자신을 선한 계몽군주로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람은 지식을 개발할 수는 있지만 인성은 바꿀 수 없으므로 구성원의 인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오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그의 강점을 찾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임금은 비용이나, 반대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임금은 소득이다. 정부의 합법성은 국가 내부에 있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만, 기업의 합법성은 조직 외부에 있는 고객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며 기업 내부의 인력은 오직 고객창조에 기여할 때 존재근거가 있다. 사람의 능력과 전문성, 그리고 그의 기능에 대한 화폐적 대안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책임의 원리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책임보다는 쟁취에 배경을 두게 된 것은 태생의 정치성 때문으로, 경영층을 대상으로 느끼는 약자로서의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한다. 드러커는 이를 노동조합이 앓는 불안신경증이라고 표현했다. 보수주의 사상가로서 드러커는 혁명과 단절 대신에 연속과 지속적인 포기 또는 탈학습을 동반한 축적을 통해서만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1등기업의 사업기반은 생각보다 취약하다. 드러커는 혁신을 한 때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규범으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드러커의 경영사상은 이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정치학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자유를 반납한 직장인들이 중세농노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지식은 오늘날 새롭게 발견된 궁극의 자본이다. 지식노동자가 조직 내에서 기여할 곳을 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상사의 책임으로 여기에 드러커가 말했던 리더 또는 경영자의 역할이 있다. 드러커는 “너 자신의 시간을 알라!”라고 말할 정도로 생산성향상을 위한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더없이 강조했다. 최소한의 질을 전제한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를 아는 데에 초점이 있다.
또한 지식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외부에 드러내도록 만드는 것만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도 없다. 생산성은 자원의 총체적인 투입측면에서 봐야 한다. 한 사회의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이 성과창출에 기여하는 자원인지가 중요하며, 가장 근원적인 것은 두뇌형성이다. 등록특허 수가 세계 4위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왜 그에 걸맞은 수준의 탁월한 글로벌 기술기업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가? 생산성이란 본질적으로 노력으로부터 결과를 낳는 정도를 말한다.
2부 조직 경영
“본질적으로 이익과 수익성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경제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업의 목적이 이익추구에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에너지흡수가 생존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수익성을 절대로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와 동시에 수익성 이외의 여러 생존조건들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관철시켜 왔는지 모른다.
실제로 기업의 지속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이익의 배후에 몸을 숨긴 채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무엇이 기업을 경영해야 진정 올바른 경영에 이를 수 있는가? 목표들이다. 목표에 의한 경영은 기업 경영관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것이다. 왜 돌을 쪼느냐는 질문에, 한 사람은 “먹고살려고”, 다음 사람은 “가장 멋진 솜씨로 돌을 쪼는 사람이 되려고”, 마지막 사람은 “성당을 짓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이 셋은 각각 ‘노동자’, ‘전문가’, ‘경영자’라고 불린다. 조직에 속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질서가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한다.
드러커가 자연상태를 예찬했던 루소를 부정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몰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공유하는 목적과 성과목표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목표에 의한 경영은 몰입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측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과거보다 얼마나 진보가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드러커는 자기통제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자동차 계기판에 나타난 정보를 예로 들었다. 정보가 하급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는 순간 MBO의 취지는 실종되고 경영자의 목표달성 능력은 현저히 저하된다. 목표와 자기통제에 의한 경영이야말로 경영자가 구성원들 사이에서 리더로 인정받는 방법이며, 경영자 권력의 합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성과는 세는 것이 아니라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드러커의 말은 현장에서 반대로 나타난다. 어느 은행원은 새로운 금융상품이 출시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쪽은 제지회사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기적은 항상 후유증을 남긴다. 드러커의 관심은 처음에 경영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권력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자칫 정당한 권력, 즉 권위가 실종될 위험이 있다. 구체제로부터 급격한 단절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려 했던 프랑스혁명이 결국 실패했던 이유도 기존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했기 때문이다.
경영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소통 또는 수평적 소통이 아니라, 올바른 목표를 찾기 위한 소통이어야 한다. 최고경영자 내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인간관계의 호불호가 개입하는 것은 가장 위험하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오직 구성원들이 조직 내 타인의 성과에 상호 기여할 때에만 이루어진다. 성공하는 순간, 성공을 있게 해 준 그 행동은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린다. 성공 이후에는 성공 이전과 전혀 다른 현실이 창조된다. 성공한 조직은 과도한 자신감, 더 나아가 오만함에 엄습당하고, 과거의 행적이 도덕, 신념을 넘어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앙이 되어 버린다. 변화와 혁신은 사실은 사람본성에 거스르는 것이다.
지식노동자가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그가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조직에서 지속적으로 부여된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흔히 경영자들은 힘겨운 노력 끝에 관행이 정착되는 것을 보고 사업이 ‘자리를 잡아간다’고 여긴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를 말했던 슘페터는 안정상태가 비정상이고 변화가 오히려 정상이라고 보았다. 안정된 상태야말로 가장 달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상태다. 구스타브 말러는 자신의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일 년에 최소 두 번 이상 객석에 앉아 자신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어떻게 들리는지 직접 체험해 볼 것을 요구했다.
3부 비용 경영
비용은 단순히 재무나 회계현상이 아니라 분명히 기업가적 혁상이고 혁신 현상이다. 경영자가 이렇게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비용은 언제나 절감의 대상으로만 보일 것이다. 영업조직은 파레토 원리가 작용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결과를 창출하지 않고 사라지는 비용을 재무재표상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운항 중인 비행기의 빈 좌석과 같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 정작 어떤 거래활동들이 비용의 이면에 있는지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비용절감에 돌입한다면, 진단도 하지 않고 수술에 착수하는 돌팔이의사와 다를 바 없다.
드러커는 사업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활동기반원가계산ABC(Activity Based Costing)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1995년 동양제과는 미국의 콘설팅회사로부터 초코파이가 효자상품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ABC에 의해 비용대비 성과를 계산해 보면, 초코파이 사업부문의 영업이익률이 전체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대는 목표하는 가격에 맞추어 비용을 책정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4부 비전 경영
2016년초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1위를, 그것도 3년 연속 1위를 했다는 보도는 큰 의미가 없다. 블룸버그는 ‘아이디어의 세계에서 한국이 왕’이라는 기사 표제까지 뽑았다고 한다. 그러나 뛰어난 아이디어가 아무리 넘쳐난다 해도 정작 체계적인 경영을 통해 고객창조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모두 무의미하다는 드러커의 말을 떠올리면, 이런 표제는 마치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 혁신은 좋은 것이지만 위험한 행동이어서는 안 된다. 드러커가 만났던 수많은 혁신경영자들은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다. 그보다는 성실, 끈기, 몰입이 관건이다. 혁신은 일상적이며 하나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역사상 위대한 혁신은 대부분 이미 있는 것들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다. 복잡한 혁신은 대개 실패한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신제품개발이 아니라, 그때까지 축적된 애플의 모든 기술력이 총동원된 야심작 PDA 뉴튼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세상을 바꿔 놓겠다는 식의 사업추진은 대개 실패한다. 크기를 키우는 일은 한정된 시장에서 고객창조에 성공한 뒤에 점진적으로 수행할 일이다. 작게 시작한 뒤 주기적으로 피드백하라. 혁신은 평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고통스런 외과수술이 아니라 늘 일어나는 세포의 신진대사 같은 것이어야 한다. 경영자의 큰 의사결정은 항상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나온다. IT 붐이 한창이던 1998년에 드러커는 “컴퓨터는 경영자가 내부의 비용에 치중하는 나쁜 습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앞으로 10~15년 사이에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정보기술의 다음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컴퓨터가 강점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백치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경영자는 절대로 백치여서는 안 된다. 생물체는 종마다 그 크기가 스스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유전자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 경영자가 크기를 의도적으로 경영하지 않으면, 그 크기가 자신을 죽인다. 기업은 성장해야 한다. 다만 팽창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올바른 방식, 틀린 방식, 그리고 우리의 방식, 이 세 가지가 있다”. 특별히 주의를 각성시키지 않는 한, NIH: Not Invented Here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크기 자체에는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커의 입장이었다. 그는 ‘막연히 큼’을 경계했고, 그 치유법으로서 목표와 자기통제에 의한 경영을 제안했다. 체계적 혁신과 체계적 포기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면, 건강한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기술에 기반을 둔 다각화는 시장에 기반을 둔 것보다 성공가능성이 낮다.
만약 인수한 신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인수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또 피인수 사업은 인수 주체와 기질이 맞아야 한다. 종종 화장품이나 향수사업에 진출하는 제약회사가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사업추진은 “성장을 하긴 해야 하는데, 뭔가 다른 걸 해보자.”가 아니라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딸에게 최선의 남편감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 딸은 누구에게 최선의 아내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 경영은 다 똑같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원리가 같다는 것이지 필요한 지식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의도’는 드러커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 경영자가 마땅히 올바름의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이끌어야 하는 반면에, 대중들의 정서는 주로 선과 악의 정서에 좌우당한다. 드러커는 개인의 합리성과 사회의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 대신에, 불합리, 나약, 탐욕, 불안, 공포에 휩싸인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경영자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윤리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미학이야 말로 진정한 윤리학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무엇이 기업의 죄인가? 기업은 자신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다.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지속을 시도하는 행동도 결국은 죄에 이른다. 소비자는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에만 관심이 있으며, 기업이 원가를 얼마 들여 만들었느냐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 따라서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먼저 가격을 정하고 그에 맞는 원가구조가 달성되도록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 일본자동차와 가전산업이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시장을 석권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케아 역시 이 방식으로 전 세계 시장공략에 성공했다.
드러커가 경영사상을 말한 목적은 인간이 일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책임을 자각하고 자기 존엄을 구현하는 원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일종의 화두와 같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개인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식은 권력이고 권력은 책임이다.”
글 | 최병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체이스맨해턴은행과 한화증권 국제부 그리고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아츠앤컬쳐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