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모든 감정과 열정을 쏟아내는-누군가는 장황하다고 할 수 있는-독일 낭만주의에 비해 절제된 충격을 던져준 프랑스의 선두적인 작곡가이다. 사실 기존 음악 중에는 드뷔시의 마음에 드는 음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젊었을 당시의 드뷔시는 그 무렵 유럽 음악계의 우상이던 바그너에 빠져 있었으나, 1894년부터 바그너를 극복한 듯 태도를 바꾸어 반(反) 바그너주의자가 되었다. 동시대의 작곡가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그는 브람스를 완전히 무시했으며, 차이코프스키를 싫어했고, 베토벤까지 따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음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태도는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드뷔시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며, 덕분에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현대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애매한 조성, 다양한 색채감, 분위기의 움직임 등 그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펼쳐나감으로써 동시대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드뷔시가 위대한 작곡가임은 분명하지만, 그 인간적인 성격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대인관계가 좋지 않아서 에릭 사티 등 극소수의 친구밖에 없었으며, 거의 모든 사람과 논쟁을 벌였다. 또한 두 여성과의 저돌적인 사랑의 행각과 두 번의 결혼은 모두, 당시 파리에서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릴리(Lily)와 결혼하려고 할 때는 그와 수년간 동거했던 가브리엘(Gabriel)이 권총자살을 기도했으며, 드뷔시가 첫 번째 아내인 릴리를 버리고 엠마(Emma)와 재혼하려 하자 이번에는 릴리가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병적일 정도로 신경질적이었으며, 자기가 모르는 사람과 있는 것을 불안해했고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몹시 싫어했다.

하지만 낭비벽이 심했던 드뷔시는 그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사들이고 캐비어와 같은 비싼 음식을 마음껏 먹고 고가의 옷을 입기 위해 계속해서 돈을 꾸었다. 드뷔시의 음악은 라벨(Ravel), 바르토크(Bartók) 등 20세기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막대한영향을 미쳤지만, 인간 드뷔시는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였음이 분명하였다. 드뷔시의 두 번째 부인인 엠마도 드뷔시와 같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엠마가 검소한 부인이었다면, 드뷔시가 사치스럽고 낭비벽이 심하다는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을까?

먼저, 부부 당사자간에는 협의에 의하여 이혼할 수 있다(민법 제834조). 당사자간의 이견으로 협의이혼이 어려운 경우에는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있다. 다만, 재판상 이혼이 가능한 사유는 법에 나열되어 있는데,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제1호), 악의의 유기(제2호),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에 의한 심히 부당한 대우(제3호), 직계존속에 대한배우자의 심히 부당한 대우(제4호), 3년 이상의 생사불명(제5호)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법 제840조 제6호에 따라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재판상 이혼을 할 수 있다. 마지막 제6호는 문구가 추상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가는 구체적인 경우에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제6호에 해당한다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혼인관계가 심각하게 파탄되어 혼인공동체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 사실이 있어야 하고, 이 경우 혼인 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당사자 일방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배우자의 낭비벽이나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 과거 우리나라 법원은 지나친 계모임 활동으로 인한 가사소홀과 채무부담 행위에 대해서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특히 낭비적인 생활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판단한 적도 있다(다만, 1960년대 판결이기 때문에 낭비에 대한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최근에도 다음과 같은 낭비, 사치로 인한 이혼 소송이 간간이 눈에 띈다.

A와 B는 2013년 혼인신고를 한 부부였는데, A는 월급 및 수당 등을 B에게 주어 이를 관리하도록 하였고, B는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였다. B는 A와 거주하던 건물의 담보대출금을 모두 갚기 전에는 검소하게 생활하다가 담보대출금을 다 갚은 후부터 갑자기 기존의 검소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다. 가사를 게을리하였을 뿐 아니라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예금 5,800만 원을 몰래 찾아가 그 중 2,000만 원 이상을 유흥비 등에 사용하였다.

그 후 A가 B를 책망하자, B는 남은 3,500만 원을 A에게 돌려주고 집을 나간다. 이에 법원은 A와 B의 혼인관계는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고,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사치와 도박으로 가정생활을 등한시하고 스스로 가정을 떠나버린 B에게 있다 할 것이며, 이는 민법 제840조 제3호, 제6호에서 정한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하여 A와 B는 이혼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가사를 소홀히 하고 집을 나가서 연락이 안 되는 등을 제3호의 배우자에 대한 심히 부당한 대우로, ‘낭비’를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보았을 것이다.

사실 오로지 배우자의 낭비나 사치만으로 이혼 여부가 결정된 판결례를 찾기는 어렵다. 위 사례에서도 재판부가 재판상 이혼사유로 단지 사치, 낭비만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는 대부분의 이혼 소송에서 하나의 사유만을 들어 이혼 소송을 청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여러 가지 다양한 사유들이 중첩 및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이혼을청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낭비나 지나친 사치 등은 그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뷔시는 지휘자로서 유럽 순회연주를 다녔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낭비벽이 심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는 사치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므로, 드뷔시의 경우에는 이를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고까지 하기에는 어렵지 않았을까.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파운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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