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Thousand and One Nights
One Thousand and One Nights

 

[아츠앤컬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동양의 업적이 있다면 단연 「천일야화(千一夜話), 영어: One Thousand and One Nights, 페르시아어: بش کی و رازهه (Hazār-o Yak Šab)」가 꼽힐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The Arabian Night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이 이야기가 영어로 번역된 이후라고 한다.

대개의 고전이 그렇듯, 아라비안나이트, 특히 아라비안나이트 내에 있는 ‘신드바드의 모험’이나 열려라, 참깨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거인 지니의 ‘알라딘과 요술램프’ 등의 유명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169개나 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길고 짧은 이야기와 그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그 대략의 줄거리만이라도 아는 이는 또 흔치 않다.

“아주 먼 옛날, 인도와 중국의 여러 섬을 다스리는 사산 왕조의 한 대왕이 있었다.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는 단 두 왕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형 샤리아르가 부왕의 뒤를 이었으며, 동생 샤자만은 멀리 사마르칸트의 왕으로 봉해져 형 곁을 떠났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왕 샤리아르는 어느 날 사냥에 나가고 없는 틈에 왕비가 흑인 노예와 희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격분하여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살해해 버렸는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여자의 불성실을 증오하게 된 왕은 새로이 법령을 내려 온 나라에서 미인을 하룻밤에 하나씩 아내로 맞아들여 그 다음날 아침이면 사형에 처하기로 한다.

Sultan Pardons Scheherazade
Sultan Pardons Scheherazade

이 전대미문의 법률은 딸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처녀들은 매일 살해되거나 아예 국경을 넘어 도망치거나 하였는데, 마침내 한 재상의 큰딸까지 불려 들어가게 된다. 재상은 슬픔에 잠겼으나 딸 세헤라자드(Scheherazade)는 자진하여 왕의 침실에 들어가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세헤라자드는 동생 둔야자드를 불러서 자기의 계획을 말했다.

그날 밤 세헤라자드는 왕에게 동생과 마지막 이별을 하고자 하니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하여, 왕의 허락을 받고 동생을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둔야자드는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언니가 옛날 전기와 이야기에 통달하고 있으니 무엇이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언니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를 듣고 있던 샤리아르는 그만 호기심이 생겨서 둔야자드의 소원을 허락했다. 그리하여 세헤라자드는 마침내 탁월한 말솜씨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부유한 상인이 장사 일로 멀리 여행을 나갔는데,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더운 사막 속에서 야자나무 그늘을 발견하고 거기에 앉아서 나귀에 매단 가죽부대 속에서 대추 열매를 꺼내서 먹고 그 씨를 주위에 뱉어 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마귀가 나타나 상인을 죽이려고 했다. 놀란 상인에게 마귀는 “네가 뱉
은 대추씨가 지나가던 내 아들의 눈에 들어가 그 때문에 아들은 죽어 버렸다. 너는 내 아들의 원수다.”라고 하므로 상인은 모르고 한 일이니까 용서해 달라고 빌며 애원했으나 마귀는 들어주지 않고 상인의 목을 잡아 커다란 칼을 휘둘렀다…

여기까지 세헤라자드가 이야기했을 때 훤하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왕은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서 세헤라자드를 하룻밤 더 살려두기로 했다. 그날 밤도 둔야자드의 재촉을 받아 세헤라자드는 다음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또 이야기 도중에 날이 밝고, 왕은 다음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서 또 하루 더 세헤라자드의 사형집행을 연기했다.

이렇게 세헤라자드는 밤마다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신드바드의 모험’이나 열려라, 참깨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거인 지니의 ‘알라딘과 요술램프’ 등의 유명한 이야기들은 모두 이렇게 하여 생겨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헤라자드의 이야기가 1,001일의 밤까지 이르자 샤리아르 왕은 그녀의 재능과 지식과 언변에 감탄하여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악법을 폐지하였으며 세헤라자드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선정을 베풀어 왕국은 오래오래 번영했다.

그런데 하룻밤에 한 명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다음날 사형에 처한다는 전대미문의 법률에 세헤라자드가 문제를 제기하려면 어떻게 했었어야 했을까?

일반적으로 당사자간의 법률관계에 있어서 다툼이 발생한 경우에는 대체로 법원의 재판을 통하여 누구에게 어떠한 내용의 권리가 있는지를 확정하고, 이를 통하여 종국적으로 당사자간의 다툼이 해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거나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다툴 때가 있다.

이때에는 다툼을 법원의 재판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정한 권한 있는 재판기관이 그 분쟁에서 과연 무엇이 헌법에 합치되는 것이고 합치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여 헌법에 반하는 법률조항이나 공권력 행사를 바로잡음으로써 해결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것이 헌법재판이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이고 으뜸가는 법으로서 모든 하위 법령, 즉 법률, 명령, 규칙 등의 내용은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아니 되며 대통령,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모든 국가기관은 모든 권력의 행사에 있어서 헌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의견의 차이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다툼을 해결하여 국가 공권력 작용이 헌법을 준수하게 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재판이 바로 헌법재판이고, 이는 헌법재판소에서 관장한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심판청구에는 크게 5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세헤라자드와 같은 경우에는 헌법소원심판과 위헌법률심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헌법소원심판은 공권력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 그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헌법소원은 국민이 직접 심판청구의 주체가 되고 기본권 침해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를 목적으로 하므로, 우리 헌법이 마련한 기본권 보장의 제도적 장치 중 핵심적인 것이다.

그리고 위헌법률심판은 법률이 헌법에 합치하는가의 여부를 심판하여 위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 법률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제도이다. 위헌법률심판은 정부 등의 자의적 입법에 대한 헌법보장기능으로서 헌법재판의 핵심이다. 세헤라자드는 본인의 재능과 지식 그리고 언변으로 문제를 해결했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러한 헌법재판제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파운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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