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지난해 11월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 높이가 무려 1170㎝, 폭 486㎝에 달하는 초대형 괘불 전시가 열려 큰 화제가 됐었다. 작품은 한반도 땅 끝 해남의 미황사에 모셔져 있는 ‘보물 1342호 미황사 괘불도’의 현상을 모사한 것이다. 원작과 1대 1 크기로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동국대 출신 석·박사과정 연구자인 9명의 불화가(佛畵家)들이 약 3년에 걸쳐 안료 분석과 적외선 및 디지털 현미경 촬영 등 과학적 조사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당시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은 “과학적 보존기법이 총동원돼 현존하는 회화 문화재 보수정비의 기술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전기를 마련했다”고 호평을 한 바 있다. 이 역사적인 ‘미황사 괘불 현상모사 프로젝트’를 총 지휘했던 이수예 작가가 새해를 맞아 같은 장소에서 특별한 현대불화전(1.7~1.13)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엔 전통적인 단청(丹靑) 기법 중 화문(花紋)과 초틀임 배열을 재해석한 20여 점이 선보인다. 단청 고유의 미감을 살리되, 반복되는 문양의 패턴이나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성이 돋보인다. 그녀의 작품은 마치 컴퓨터로 작업한 듯 너무나 견고하고 정밀해보이지만, 온전히 수작업에 의존해 완성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이수예 작가가 작품의 주된 모티브를 얻는 곳은 주로 현존하는 사찰의 불전(佛殿) 내부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단청문양의 반복되는 패턴에서 따온 것이다. 이 단청기법은 불교미술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와 다시 복원된 조선중기 이후의 특징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이다. 극도로 화려한 금단청 양식과 정적이면서도 넘치지 않는 위엄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다. 평소 철저한 고증에 의한 문화재 수리 및 조사활동 이력은 고스란히 이수예 작가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어, 한국적 전통미와 현대적 재해석의 묘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수예 작가가 가장 많이 등장시키는 화문(花紋)과 당초문 두 가지의 문양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바로 불국토(佛國土) 사상의 시각적 구현이자, 화엄(華嚴)세계에 대한 염원이다. 화엄은 ‘불법(佛法)의 광대무변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며, 온갖 분별과 대립이 극복된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수예는 그런 화엄의 이상향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로써 꽃문양을 선택했다. 이 꽃문양은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 천정의 우물반자틀이 교차하는 지점을 장식한 꽃 조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또 이와 유사한 꽃문양은 법당의 출입문을 장식한 ‘꽃살문’에도 등장한다. 꽃문양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와 중생계를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을 한다. 그 아름다운 꽃의 문을 지나면 비로소 온갖 생멸의 고뇌에서 벗어나 부처님을 영접하게 된다. 이수예는 바로 그 꽃의 상징성을 포착해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상의 사람들도 달라지듯, 불교미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교미술이 지닌 정체성만은 변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되, 좀 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대적 감성이 녹아든 불교미술의 작품세계를 지향합니다.”
이수예 작가의 말처럼, 친숙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포용하고 있는 새로운 불교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가령 우리 민족의 가장 보편적인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연꽃을 옮기면서도 너무 불교적인 해석에만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 아이콘으로 재해석한 센스가 남다르다. 또한 막연한 상상에만 머물 수 있는 ‘부처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다양한 단청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수예의 단청그림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무늬와 문양으로써, 마치 부처님이 머문 불국토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아마도 이 작가가 해석해낸 수려한 문양의 향연이 전혀 낯설거나 경계심이 들지 않는 이유는, 단청이미지가 우리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잠든 미의 원형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수예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기독교 중심의 성화에 대한 깊은 연구로 꽃피운 서양미술의 역사처럼, 우리 역시 DNA 깊숙이 잠든 동양미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작가 | 이수예(1973~) 작가는 동국대 미술학부에서 불교미술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졸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수예 작가만큼 한국 불교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과 폭넓은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한 예도 드물다. 제32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 등 수많은 수상 이력 외에도 단청부문 문화재수리기술자, 도금ㆍ보존과학공ㆍ세척공 부문 문화재수리기능자 등의 국가자격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녀의 회화작품(불화)이 봉안된 사찰은 40여 곳이며, 개금ㆍ개채ㆍ단청 작업에 참여한 곳 역시 40여 곳이다. 특히 그동안 6회의 개인전고 수십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급 수리 및 조사를 주도한 것도 50여 곳에 달한다. 현재 이수예는 (사)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 이사장,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동국대학교 및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육원 등에 출강 중이다.
글 ㅣ 김윤섭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수료. 현재 미술평론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 및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