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루이 16세 앤틱가구를 18세기 프랑스 왕실가구의 완성이라고도 표현한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며, 실용 예술의 경우 주변 유럽 국가 최고의 예술가들을 초청하고 지원하며 프랑스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이미 루이 14세 시절부터 건축, 미술뿐 아니라 도자기, 가구, 타피스리, 오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스제가 당시 주변국가와 견주어 보았을 때 우수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실상 앤틱가구 분야의 경우, 루이 14세 때 많은 노력과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루이 15세 때 이에 대한 결실로 화려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루이 16세 앤틱가구의 경우, 절제와 판타지로 맺은 열매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루이 16세 가구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정확히 어느 시기에 생산되었을까?
루이 16세 앤틱가구는 1774년부터 1791년에 생산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랑스 18세기 가구의 결정체라고 일컬을 정도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가지 참고해야 하는 점은 루이 16세 가구는 루이 16세가 왕위로 즉위하기 전인 루이 15세 왕정 때 이미 탄생하였다는 점이다. 한편 루이 16세 가구를 다른 표현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가구’라고 한다. 이는 실제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여왕이 엄청난 수량의 가구를 주문하였으며 루이 16세 왕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 왕의 본명은 루이 오귀스트이며, 1754년 8월 23일 출생하여 1793년 1월 21일에 단두대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그를 ‘마지막 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루이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도팽 루이 페르디낭이며,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루이 15세 왕이다.
한편, 그는 오스트리아 황녀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1770년 5월 16일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결혼하였다. 1774년 5월 10일에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서거하자 1775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왕위에 올랐다. 당시 국력이 이미 쇠약해진 상태였다.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여 국왕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했으며,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관계에서도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의 프랑스는 귀족층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갈수록 심각해졌던 시대였다.
절제된 직선미 안의 판타지 미학
루이 16세 가구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반듯한 직선미라고 할 수 있다. 멀리서 보아도 반듯하고 깔끔한 루이 16세 가구는 세련되고 날렵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가구 전체의 라인뿐 아니라 특히 의자의 다리 등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일직선이다. 한편, 이러한 직선의 반복에서 오는 건조한 느낌을 피하고자 가구 디자이너들은 합판 무늬 장식을 통해 리듬감을 주었다. 예를 들면, 기하학적 무늬의 반복, 큐브 무늬, 풍경 무늬 데코레이션, 전원 풍경, 일상의 오브제 등을 모티브로 하였다. 가끔은 잉크병 모양이나 도자기 형태의 모티브도 볼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직선미에서 오는 절제미와 상반되게 일부 가구들은 판타지를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이삭 형태의 가구들이 그렇다. 마리 앙투아네트 컬렉션인 이 가구들을 ‘에삐 가구’라고 부른다. ‘에삐(Epi)’는 프랑스어로 이삭을 뜻하는데, 마치 벼 이삭 단을 묶어 놓은 것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 또한, 솔방울과 나뭇잎이 달린 줄기를 이삭에 두른 것처럼 조각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다. 그리고 단색이 아닌 초록색, 노란색, 분홍색, 흰색 등 여러 가지 색상이 서로 다른 모티브에 칠해져 있어서 정말로 상상력이 풍부하게 동원된 판타지 가구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베르사유 궁전 한 곳에서 자신의 농가를 꾸며놓고 생활했을 만큼 전원생활을 좋아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듯하다. 이처럼, 파스텔 톤으로 화사하면서도 농가적인 느낌이 드는 이 ‘에삐 가구’는 몇 점 제작되지 않아서 희소성과 예술성 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가치 또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값진 가구로 여겨진다. 참고로 이 ‘에삐 가구’를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앤틱가구의 모나리자라고 일컫는다.
루이 16세 가구 디자이너
루이 16세 앤틱가구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누가 있었을까? 그 누구보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로서 장 앙리 리에즈너(1734~1806)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마호가니 목재를 사용했는데, 루이 16세 가구 디자이너 중 최고의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명성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지금도 그의 가구는 최고가로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마르텡 카를랭(1730~1785)을 들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카를랭의 전문분야는 포슬린 부착가구이다. 이는 목재소재의 가구에 독특한 디자인적 요소를 첨가하고자, 당시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높게 평가받았던 사기를 가구에 부착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렇게 사기를 부착하여, 다소 단조로운 느낌의 가구에 다양한 색깔로 포인트를 주는 효과를 줄 뿐만 아니라, 꽃무늬나 기하학적 무늬 등 다양한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여성적인 느낌의, 고급스러우면서 전체적인 선이 가볍고 가는 가구를 많이 생산하였으며, 소재는 장미목과 마호가니를 주로 사용하였다.
크라메르 앤틱 갤러리 (The Kraemer)
이러한 가구들의 유통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실상 왕실가구는 상당수가 박물관이나 궁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서의 유통량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우 고가여서 이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실제로 앤틱시장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은 왕실가구가 아닌 루이 16세 당시 제작된 가구이다.
하지만 몇 대째 왕실가구 컬렉션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최고의 앤틱갤러리가 있다. 크라메르 갤러리인데 1875년에 설립되어 현재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크라메르 앤틱갤러리는 프랑스 최고의 앤틱갤러리의 명성을 지닌 거상이자 컬렉터라고 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오직 가족으로만 구성되었으며, 남다른 프로의식으로 무장된 거상의 프라이드가 남달랐다. 그들의 루이 16세 앤틱가구 컬렉션은 놀라울 뿐이다. 파리 오스만 건축의 한 건물 전체가 갤러리인데, 층마다 최고의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 루이 16세 가구 디자이너 중 최고의 명성을 지닌 장 앙리 리에즈너 가구 코너를 별도의 공간에 따로 마련하였다. 리에즈너 가구는 디자인도 놀랍지만, 실용성이 매우 높은 가구이다. 마치 복합기능을 지닌 가구라고 해야 할까? 책상의 높낮이가 조절되고, 빛의 강도에 따라 빛가리개를 펼 수도 있고, 비밀문서를 신속하게 보관하는 기능도 있다.
한편, 크라메르 갤러리의 주 고객층을 열거하자면 로스차일드 가문과 니심 드 까몽도 박물관의 설립자인 까몽도 가문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도 크라메르 가구를 보유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폴 게티 미술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에 자신들의 컬렉션을 판매 또는 기증하였다. 취재 내내 시종일관 미소로 가문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크라메르의 전통이 퍽 인상적이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아트 컨설턴트, 파리 예술경영에꼴 EAC 강사, 소르본느대 미술사, EAC 예술경영 및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