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바야흐로 바캉스 계절을 맞아 지구촌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 속에 고인 피로를 풀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란 말은 라틴어 vacatio, 즉, ‘어떤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란 말에서 왔으며, 이 말의 뿌리 vein의 라틴어 vanus(텅 빈, 무의미한)란 말에서 생겨났음을 미루어, ‘복잡다단했던 삶의 모습을 잠시 접고 마음을 텅 비워 새로운 마음으로 전환할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가 녹아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바캉스를 맞아 즐겨 찾는 곳이 파리이고, 생 제르맹 거리에서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현대문명의 물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생과 인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이곳은 역대로 프랑스 사상계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18세기 계몽주의의 철학 사조 아래 20세기 들어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재즈 음악의 전파와 실존주의 철학사상이 태동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들이 밀집된 곳이기도 하며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 부티크 샵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17세기 최초의 까페 르 프로고프가 셍 제르맹으로 이사해 오고, 이곳에서 수많은 지성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철학과 사상과 문학, 예술을 싹 틔웠던 곳이다. 세계의 지성인, 세기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사르트르와 보부와르가 매일 저녁 앉아서 글을 썼다는 카페 플로르(Cafe de Flore), 1885년 창업한 이래 헤밍웨이, 피카소, 사르트르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작업과 토론을 벌였던 곳, 1907년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쥬 브라크가 만나 큐비즘이란 입체파의 한 장르를 창시한 곳이 카페 되 마고(Cafe les Deux Magots)라 전해져 더욱 살아있는 역사적 의미를 느낄 수 있는 19세기 및 20세기 프랑스 지성사, 그 자체다.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는 카페 되 마고 맞은편에 있는 성당에 생 제르맹 파리 주교가 묘지에 매장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 거리에는 늘어나는 유명 고급브랜드 상점 때문에 예전의 지적 분위기가 사라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래된 카페와 골동품상들과 함께 세련된 분위기를 더해가고 있는 파리의 명소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브라스리 립은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한 카페로 생텍쥐페리도 자주 들리던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학사원과 에꼴 데 보자르 대학교 뒷골목 쪽에 형성된 소규모 갤러리가 즐비한 이곳은 생제르맹 데프레를 중심으로 북쪽은 갤러리, 남쪽은 부티크들이 늘어서 있다.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노트르담 방향으로 향하다가, 예술의 다리인 ‘퐁 데자르’를 만나 프랑스 한림원 쪽으로 들어가면 이곳으로 연결된다.
생 제르맹 데 프레! 1163년에 헌당되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 영화 ‘다 빈치 코드’로 유명해진 생 쉴피스 성당, 조각작품과 현대미술들을 만나고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문학가들이 남긴 지성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지난 ‘역사의 향기’와 ‘사람의 향기’를 짙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그림 | 정택영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 프랑스예술가협회 회원, 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