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파리 6구 보지라르 거리(rue de Vaugirard)에 뤽상부르 박물관(Musée du Luxembourg)이 있다. 이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근현대예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데 1750년에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왕실이 선호하는 작품을 주로 전시하다 1818년부터 생존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었고 이후 이 같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19세기 이후 근·현대 예술 작가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전시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뤽상부르라는 이름은 박물관 인근에 있는 뤽상부르 궁전(Palais du Luxembourg)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 이 미술관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전시회가 2월 21일부터 7월 21일까지 ‘Entre Guerre et Paix; 샤갈, 전쟁과 평화 사이(Chagall Between War and Peace)’란 주제로 열리고 있다.

1910년 샤갈은 한 후원자의 재정지원을 얻어 파리로 왔고 파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로 샤갈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1911년 화실이 몰려 있는 ‘라 뤼슈’(La Ruche, 벌집이라는 뜻)로 거처를 옮긴 곳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수틴(Chaim Soutine), 아키펭코(Alexandr Archipenko), 레제(Fernand Léger)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야수파와 입체파 같은 새로운 양식의 실험을 하던 곳이었고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 같은 시인들과 어울렸으며, 특히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던 시인 블레즈 상드라르(Blaise Cendrars)와는 깊은 우정을 나눴다. 후에 상드라르는 샤갈에게 바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샤갈은 파리에 머문 이 시기에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 새로운 작업방식에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일구었고, 197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생존화가로 루브르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을 지켜보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남프랑스의 생 폴 드 방스에서 살았고, 1985년 97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대 예술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예술 사조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느 한 유파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샤갈은 눈부신 색채로 시적인 호소력을 담아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를 구현해냈다. 그의 환상적인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비이성적인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의 추억들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종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파리 중앙에 꿈과 사랑과 그리움이 녹아 스며든 샤갈만의 독특한 장르의 작품들을 보면서, 인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고립된 사고 속에 갇혀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이며 모순적인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 것이다. 삶은 자유를 구가하고 사랑하며 그리움 속에서 자신의 가슴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글·그림 | 정택영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 프랑스예술가협회 회원, 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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