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날개에 실린 세레나데
누구에게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가 한 군데 쯤은 있다. 그곳이 생각날 때면 사람들은 당시 보았던 풍경은 물론이고 느꼈던 감정, 그날의 날씨, 주변의 소음이나 냄새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것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긴다. 가끔은 보도나 기사로 그곳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반가움도 잠시, 마음은 이미 그 장소로 순간이동된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추억이 머무른 장소를 그리워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길 원한다.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사진이나 문장, 화폭에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영상이나 노래에 담겨 전해지기도 한다. ‘라 팔로마’ 역시 작곡가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Sebastián Yradier)의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노래이다.
‘라 팔로마’는 스페인어로 비둘기를 뜻한다. 1850년대 이라디에르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방문한 후 아름다운 부두의 정경을 마음에 담아 스페인으로 돌아온다. 카리브해의 일몰이 내려앉는 아바나 항구와 길게 펼쳐진 방파제, 그곳을 지나는 한 아가씨의 이국적인 매력은 그로 하여금 비둘기에게 순정을 실어 보내는 낭만적인 곡을 작곡하게 한다. ‘라 팔로마’는 이라디에르에게 있어 잊지 못할 추억의 기록이었지만 발표 당시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노래가 150년을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의 세레나데로 사랑받으리라는 것을. 1865년 12월, 죽음의 침상에서 그는 어쩌면 아바나의 정경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의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가 찾아온다면
내가보냈다 여겨 애정으로 살펴주오.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전해주고, 내게 하듯 꽃장식도 씌워주오.
오, 소녀여, 내게 사랑을 주오.
나와 함께 떠납시다! 내가 사는 곳으로”
세계인의 애창곡인 ‘라 팔로마’의 매력은 운율의 탄성을 이끄는 아바네라(habanera) 리듬에 있다. 이는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콘트라단자(contradanza)에서 출발하며, 그 후 쿠바에 전해져 발전되다 남미 전역으로 확산된다. 19세기 유럽으로 역수입된 쿠바식 아바네라는 2박자의 부점형과 이에 더해진 셋잇단음(triplet)의 연속성으로 여유와 생동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아바네라 리듬은 단손과 맘보, 차차 등 다양한 무곡의 기본 구조로 쓰였으며, 아르헨티나 탕고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포크(folk) 송의 범주를 벗어나 비제(G. Bizet), 마스네(J. Massenet), 라벨(M. Ravel), 샤브리에(E. Chabrier), 생상스(C. Saint-Saëns) 등 프랑스 고전 작곡가들의 걸작으로 재탄생했다.
수 세기 동안 이 리듬은 대중을 매료시켰는데 이라디에르의 또 다른 작품인 ‘엘 아레글리토(El Arreglito)’ 역시 오페라 <카르멘>의 가장 유혹적인 아리아 ‘아바네라’로 변신한 것은 리듬의 진가를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한편 가장 대중적인 아바네라인 ‘라 팔로마’는 현재까지 수많은 라틴 가수들 사이에서 최고의 레파토리로 사랑받아왔다. 특별히 로스 트레스 디아만테스(Los Tres Diamantes)나 트리오 로스 판초스(Trio LosPanchos) 같은 멕시코 마리아치(mariachi)들의 노래는 곡의 낭만성을 배가시킨다. 챙이 넓은 솜브레로와 챠로를 걸치고 비우엘라와 기타론을 연주하는 멕시코 유랑 악사들은 사람의 발길이 머문 그 자리를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로 바꾸어놓는다.
예로부터 비둘기는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하는 날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성서에서 노아는 홍수 이후 비둘기를 내어 보냈으며, 이 온순한 새는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다. 고대 그리스인들 또한 마르도니우스(Mardonius)의 전사로 전투가 종결되자 페르시아 난파선에서 귀환하는 비둘기를 보았다 한다. 갈 수 없는 곳에 날려 보내는 분신과도 같은 비둘기, 그 작은 날개에 실린 전언은 매우 짧을지라도 간절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