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을 맴도는 구슬픈 메아리

[아츠앤컬쳐] 잉카문명의 온상인 안데스 산맥에는 인디오의 염원을 담은 노래가 있다. 기품 있는 두 날개로 안데스 고원을 날아다니는 ‘콘도르’를 향한 염원, <엘 콘도르 파사>가 바로 그것이다. 국내에선 주로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철새는 날아가고>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콘도르’와 ‘철새’의 이미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마치 ‘태양의 아들’이라는 잉카의 본래 뜻과 우리에게 인식된 잉카의 이미지가 사뭇 다르듯 말이다.

구슬픈 곡조 또한 그네들의 깊은 뜻과 정신을 다 담아내기에는 다소 모자란 듯하다. 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 흘릴 때 그 얽힌 고통보다는 아름다움이 먼저 부각되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그러나 가사에 맺힌 인디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름답고 구슬픈 곡조에 맴도는 눈물의 송가를 들을 수 있다.

1531년 잉카인들은 금광에 눈독을 들인 스페인의 야욕 앞에 어이없이 무너진다. 정복지의 총독으로 임명된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부대는 황제 알현을 빌미로 무장을 해제한 잉카 민족을 무차별 살생하고 황제 아타우알파(Atawallpa)를 납치, 이듬해 처형한다. 이로 잉카 민족은 스페인의 노예로 전락하고 강제 노동과 탄압 속에서 삼백 년간 시달리게 된다. 잉카, 현재 페루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콘도르’의 날갯짓을 떠올리며 더욱 강렬해진다. 그들에게 ‘콘도르’는 용맹과 자유의 상징이자 독립의 염원이며 또한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é Gabriel Condorcanqui)를 의미한다. 콘도르칸키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사지가 잘린 채 처형당한 영웅적 지도자였으며 그의 일대기는 페루의 작곡가 알로미아 로블레스(Daniel Alomía Robles)에 의해 한 편의 가극으로 탄생했다. 1913년 로블레스는 잉카 민요인 <엘 콘도르 파사>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극작가 훌리오 드 라 파즈(Julio de La Paz)의 가사에 맞춰 사르수엘라(zarzuela)를 작곡한다. 대 국민적 관심과 열망 속에 사르수엘라는 큰 성공을 거두며 중남미권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안데스의 위대한 콘도르여,
나의 고향 안데스의 집으로 데려가 주오. 오! 콘도르여.
잉카 형제들과 사는 것만이 내가 가장 열망하는 것이라오.
오! 콘도르여.
쿠스코의 광장에서 날 기다려 주오.
마추픽추와 와이나피추를 다시 한가로이 거닐 수 있도록.

<엘 콘도르 파사>의 전 세계적 성공은 1970년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앨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함께 찾아온다. 폴 사이먼(Paul Simon)은 파리 이스턴 극장에서 공연하던 로스 잉카스(Los Incas) 그룹에 감명을 받아 그들의 반주로 <El Cóndor Pasa(If I Could)>를 녹음하여 발표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 버전은 원곡의 가사와는 달리 우수를 머금은 듯 삶의 관조적 관점을 시사한 사이먼의 영어 가사로 명곡의 반열에 오른다. 더욱이 로스 잉카스의 창시자이자 멤버인 요르게 밀흐버그(Jorge Milchberg)는 앨범의 편곡을 맡아 차랑고(charango)와 퀘나(quena), 봄보(bombo) 등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악기들로 곡에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사실상 안데스 지역의 전통 악기들은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지역의 대자연과 어우러지는 독특한 소리와 울림을 지닌다. 5개의 현으로 된 차랑고, 수직 피리인 퀘나, 팬파이프 종류의 시꾸(siku) 그리고 타악기로는 전통북인 봄보와 셰이커 착차스(chacchas)가 있으며 이외에도 길이와 모양, 재료를 달리한 신비한 악기들이 가득하다. 특별히 퀘나와 시꾸는 두드러지는 바람소리로 황량한 안데스 고원 위 잉카인들의 고된 삶을 떠오르게 한다. 고난과 역경의 세월 속에서도 한갓진 듯 피리 소리에 한을 씻어내고 영혼을 치료하던 그들의 음악, 이것은 어쩌면 인생의 황량함을 껴안고 품어낸 영혼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페루의 두 번째 애국가로 불리며 지금까지 약 4,000곡 이상의 버전으로 발표되었고 2004년 페루의 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안데스 산맥을 맴돌던 잉카인들의 구슬픈 메아리는 그들의 염원대로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콘도르의 날개에 실려 세계인의 창공에서 자유를 찾았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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