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서울 청계산 자락에 세계적 수준의 소리박물관이 들어선다. 소리박물관 하면 우선 손성목 관장이 수십 년 전부터 운영 중인 강릉의 참소리박물관이 유명하다. 에디슨의 발명품부터 축음기 분야에서는 세계적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다. 손 관장은 박물관 개관 시절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에디슨을 연구하려면 우리나라 강릉을 오지 않고는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며 에디슨의 희귀 제품들을 계속 수집해 왔으며, 마침내 에디슨박물관을 별도로 건립해 운영 중이다. 손성목 영화, 라디오, TV 박물관도 추가로 건립했다. 손성목 관장은 대규모 사업체 운영주가 아닌 개인으로서 강릉이라는 도시를 빛내고 있는 바, 우리나라 컬렉션계의 대부라 불릴 만하다.
서울에 들어설 소리박물관은 강릉의 손성목 관장이 집중한 축음기 이후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책임지게 된다. 재계 30위권의 KCC그룹은 2,000여 억 원을 투입하여 소리박물관을 설립한다. 이는 정상영 설립자와 아들인 정몽진 회장의 대를 이은 오디오사랑의 결실이다. 대기업 회장들의 하이엔드 오디오 수집은 종종 알려져 왔지만, 정몽진 회장은 오디오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디오를 제작 판매하는 실바톤어쿠스틱스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드디어 2023년에는 오디오 박물관을 직접 세울 예정인 것이다.
설계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도쿄올림픽경기장 설계자이기도 한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쿠마 켄고가 맡는다. 도쿄대학 출신으로 모교 교수였던 쿠마 켄고는 다양한 박물관 건축 경력이 있고 특히 나무 등 천연 소재를 좋아하는 건축가이다. 소리박물관의 인테리어는 나무가 맞다고 본다. 그것도 합판 나무가 아니라 통나무가 더 많이 사용될수록 좋을 것이다. 식물세포는 동물세포와 달리 세포벽이 있다. 나무가 마르며 하나하나의 세포벽이 미세한 울림통 역할을 하게 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가 만든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명기가 수백 년간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이유가 그들이 사용한 특수도료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들이 선택한 나무가 기본이 아닐까 한다.
쿠마 켄고에 의해 확정된 외관은 강남은 물론 서울의 품격을 높일 건축물이 틀림없다. KCC 소리박물관은 천장이 높아 시원한 입구를 들어서면 웨스턴 일렉트릭이 1926년 제작한 극장용 스피커, 오르골, 현대 음향기기 등 전설의 명기들을 각 층별로 전시한다.
문제는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명동이 우리나라 문화를 이끌던 시절에는 필하모니라는 고전음악 감상실이 유명했다. 가정에서 고급 오디오를 구입해서 듣기 시작하며 음악감상실 시대는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황인용 아나운서는 헤이리에서 고전음악감상실을 지금도 멋지고 꿋꿋하게 운영 중이다. 또한, 상업적 음악감상실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음에도 서울대학교가 운영하는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식당 옆 고전음악감상실도 학생들의 인기가 높다.
KCC 소리박물관의 건물과 컬렉션 등 하드웨어는 얼핏 짐작이 가는데 소프트웨어의 운영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크다. 박물관의 위치는 전철역에서 멀어 자동차로 가야만 한다. 소수의 방문객들을 위해 각층에서 고급 오디오들이 고전음악, 재즈, 팝, 국악 등을 장르별, 시간별로 들려줄지 모르겠다. 일부 방문객들은 KCC 박물관이 엄선한 명기들을 비교해가며 들어보고 싶어 할 것이다. 큐레이터들이 일일이 방문객들의 다양한 주문을 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리박물관은 어떤 경우에도 소리가 나야한다고 본다. 강릉 참소리박물관의 축음기 컬렉션은 정말 세계적 규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갈 때마다 다양한 축음기들의 소리를 마음껏 듣기는 힘들어 아쉬웠다. 서울 청계산 KCC 소리박물관은 세계적 명기를단순히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각 층별, 각 방별로 다양한 소리와 음악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서울에서 가장 가고 싶고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또 하나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에코 에너지 대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