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d refleuriront les lilas blancs

 

[아츠앤컬쳐] 얼마나 많은 시인이 리라꽃에 대해 노래했을까? 미국의 국민시인인 월트 휘트먼과 스코틀랜드의 서정시인 로버트 번스, 그리고 이미지즘의 창시자 에이미 로우얼의 시들이 차례대로 뇌리를 스친다. 예로부터 시인들의 리라꽃 사랑은 남달랐고, 때문에 리라꽃은 수많은 시상 가운데 피고 지며 향기를 남기게 되었다.

도종환, 박재삼, 정연복, 조병화, 이해인 등 잘 알려진 국내 시인들의 시에서도 리라꽃 사랑은 발견되는데, 대략 150편에 달하는 관련 시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정서 속에 자리 잡은 리라꽃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엿보게 한다.

 

리라, 영미권에서는 라일락으로 불리는 이 꽃의 꽃말은 젊음, 순수함, 첫사랑이다. 주로 흰색은 젊음을, 보라색은 사랑의 첫 감정을 의미하는데, 본디 꽃의 이름은 학명(學名)인 시링가(Syringa)에서 출발한다. 시링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요정으로, 어느 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요정들을 쫓아다니는 반인반수족 판(Paon)에게서 도망치게 된다. 집요하고 야만적인 판에게 잡힐 찰라 그녀는 스스로를 향기로운 고광나무 덤불인 리라로 변모시켰는데, 이로부터 대롱 모양의 향기로운 꽃 리라는 시링가를 닮은 아름다움과 순결함의 상징이 되었다.

리라꽃에 관한 추억을 담은 노래들도 많은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샹송 ‘리라꽃 필 무렵’이다. 하얀 라일락이 만연한 봄의 사랑을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한 이 노래는 1928년 프리츠 로터(Fritz Rotter)와 프란츠 도엘(Franz Doelle)이 작사, 작곡한 독일 가요이다.

 

1953년 동명의 영화 ‘Wenn der weiße flieder wieder blüht’의 주제곡으로도 알려진 이 곡은 발표 이듬해인 1929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바로 레오 를리에브르(Léo Lelièvre), 앙리 바르나(Henri Varna), 페르낭 루브레이(Fernand Rouvray)에 의해 프랑스어 가사로 개사되면서였다. 감미로운 샹송으로 거듭난 ‘리라꽃 필 무렵’은 티노 로씨(Tino Rossi), 잭 랑티에(Jack Lantier), 크리스티앙 보렐(Christian Borel), 다니엘 비달(Daniele Vidal)의 목소리에 차례로 실려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전하며 사랑받았다.

“하얀 리라꽃은 언제 다시 피나요. 우린 모든 맹세들을 듣게 되겠죠.

사랑이란 축하와 같아서 새로운 리라꽃이 필 때마다 우리 머리를 돌게 한답니다.

달콤한 꽃향기가 마음에 물들고, 아늑한 노래가 우릴 기쁘게 하겠죠.

젊음 가득한 우리의 입맞춤이 가장 아름다운 입술 위에 내려앉을 거예요.”

 

‘리라꽃 필 무렵’은 연주곡으로도 많이 편곡되었는데, 다채로운 악기들의 솔로나 재즈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트럼페터 에메 바렐리(Aimé Barelli)의 그랜드 오케스트라 연주나, 페트릭 소수아(Patrick Saussois)와 니닌 가르시아(Ninine Garcia)의 기타 듀오, 바이올리니스트 헬무트 차하리아스(Helmut Zacharias), 아코디어니스트 에이마블(Aimable)의 연주들도 모두 원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개성과 기량이 두드러지는 멋진 버전들이다.

이들의 음반을 듣고 있으면 왠지 누군가가 라일락 송이들을 여기저기 뿌리며 지나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향기를 쫓게 된다. 물론 그 향기는 라일락에 담긴 조금은 아련하고, 달콤하며, 간절하기도 한 추억이겠지만,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가사에 국한되지 않은 연주곡들이 상상력을 더 자극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결은 살짝 다르지만 가끔은 시인 정연복이 묘사한 향기가 도는 듯도 한데, 그건 아마도 그의 구절이 요정 시링가를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라일락꽃 앞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꽃은 보이지 않아도 코끝에 맴도는 향기,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태양 나의 애인이여,

너에게서도 똑같은 향기가 난다.”  (정연복, 라일락 꽃 향기)

 

길한나
길한나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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