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말을 타고 전쟁터에서 싸우던 시절은 아마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산업혁명의 결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형화되고 강력해진 엔진 덕에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영화에서 보더라도 전쟁터의 말은 사라졌다.
고대 전쟁터에서 말의 장점은 첫째 속도에 있었고 말을 타지 않은 지상 위 보병을 공격하는 데 효과적이었기에 결과적으로 심리전에서도 매우 유리했다. 러시아와 유럽이 말을 타고 온 몽고의 칭기즈칸 부대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던 기억은 지금도 역사
와 예술작품에서 서양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대포와 같이 원거리에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이 나오면서 말은 실제 전쟁터에서의 백병전보다는 대포를 끄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나마 이 역할도 엔진의 개발로 없어졌지만. 이후 말을 탄 지휘관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용맹한 장수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상징물처럼 활용되었다.
얼마 전 다녀온 모스크바 붉은 광장 입구의 국립역사박물관 앞에는 큰 말을 타고 있는 쥬코프 원수제정 러시아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육군 원수의 위치까지 승진,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의 전쟁을 지휘해 승리로 이끌며 세인트 피터스버그 봉쇄를 풀었다. 이 험난한 시기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초연이 이루어진다. 동상이 서 있는데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원작 소설을 차이콥스키가 오페라로 옮긴 <예브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의 배경이 되었던, 제정 러시아의 수도 세인트피터스버그 성이삭성당 앞에는 황제 니콜라이 1세의 기마상이 있고 뒤편 공원에 만들어진 피터대제 동상의 모습도 그가 탄 말이 뱀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말은 왕의 권위를 세우는데 상징적 역할을 했었다.
어릴 적 보던 위인전집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의 모습은 알프스 생베르나르산을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한 마렝고 전투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시대적 배경이 된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이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실제 나폴레옹의 이 말을 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역동적으로 그려진 백마 위에 올라탄 나폴레옹의 모습은 어린이의 눈에 아주 멋지게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나폴레옹이 말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의 기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말은 가파른 산보다는 초원을 뛰어다니기에 적합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당나귀를 타고 산을 넘었다고 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유럽뿐 아니라 혁명군을 이끌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진격한다.
무적의 나폴레옹에 대항한 러시아의 전술은 빠른 속도의 퇴각이었다. 마침내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황폐화된 도시였고 추위와 기근뿐이었다. 화려한 전리품은 고사하고 먹을 것조차 없던 모스크바를 두고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추위에 대비책이 없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가 결국 병력의 95%를 잃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1세는 전 유럽에 러시아의 저력을 알렸다. 알렉산더 1세의 초상화 중에도 나폴레옹처럼 역동적인 그림은 아니지만 백마를 탄 그림이 있다. 후에 차이콥스키는 나폴레옹을 물리친 1812년 러시아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황제 알렉산더 2세 시절 1880년 모스크바 구세주 대성당스탈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소련의 붕괴 후 다시 복원된 동방 정교회 성당의 완공을 앞두고 교회 앞 광장에서 <1812년> 서곡을 초연했다.
백마 탄 왕자가 위기의 공주를 구하는 클리셰는 21세기인 지금도 꾸준히 변주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서양 동화의 폐해인가? 영화 ‘귀여운 여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타고 온 하얀 리무진은 백마의 변주이며 그는 결국 귀여운 여인을 구원한다.
하지만 백마는 사실 멜라닌 생성이 안 되는 열성 유전 신드롬(알비노)이다. 이런 현상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이나 인간에게서도 나타나며 식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광합성이 불가능해 사멸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도태되기 쉬운 조건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얀색의 동물에 길흉화복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온갖 신화와 설화를 거치며 공주를 구할 왕자는 그가 올라탄 백마를 통해 권위와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민간신앙에 의존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서 알비노인의 뼈를 갖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살아있는 백색증 아이의 팔을 잘랐다는 경악할 사건도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은 비극의 한 예이다.
최근 방송과 언론에 확 뿌려진 북한 지도자의 사진이 있다.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달렸다고 전 세계를 향해 보도 자료를 돌린 셈이다.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오는데, 가볍게는 불쌍한 말이 무슨 고생이냐 라는 반응부터 심각하게는 연말까지 미국의 반응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면 애꿎은 대한민국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필자는 최근 서울시향 러시아 투어에 동행하였다. PC 화면으로만 보던 러시아의 황제들에 관한 역사적 건물들과 그림 그리고 전쟁역사를 눈으로 보고 오니 이번 백마 보도 자료가 더욱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21세기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내달리는 사진이 국제사회에 대한 은근한 협박과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우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코미디로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필자의 머리로는 해석이 불가한 미스터리다. 최소한 우리는 그가 구해줄 힘없는 공주는 아니지 않은가?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www.mcultur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