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요즘 나라를 뒤집어 놓을 만한 정치권의 이슈로 난리가 났다. 어떻게 진행될지 그 누구도 모르겠지만 지금 칼럼을 쓰는 이 순간에도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황금만능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절실하게 경각심을 주는 말이다. 이 문제는 만인 공통의 관심사인 만큼 다양한 예술의 모티브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기승전 ‘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인들은 돈을 벌고 모으는 데 인생을 바친다. 그러니 세상에는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 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넘친다. 어느 장르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오페라에서 돈 문제만큼은 코믹한 옷을 입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유머와 풍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유산상속을 둘러싼 소동이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표적인 작품을 들자면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도니젯티의 <돈 파스콸레>가 있다. 한편 웃음으로 포장하지 않고 주인공을 비극의 끝까지 몰아가는 작품도 있으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인 <the Rake’s progress>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코믹한 요소들도 많이 사용됐지만 결말은 원작에 충실히 따랐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소설이나 전설 등이 아닌 미술작품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가 그렸고 1735년 판화로 만들어져 출판된 동명의 작품이 그것이다.

주인공 Tom Rakewell이 물려받은 유산을 가지고 런던으로 내려가 사치스럽고 문란한 생활, 매춘과 도박을 이어간 결과 감옥에 갇히고 종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죽어가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원작인 그림은 런던의 Sir John Soane 박물관에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다. 영화감독 Alan Parker(뮤지컬 '에비타'를 영화로 만든 감독)는 원작을 두고 현대 스토리 보드의 원조라 말했을 정도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자세한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오페라 이전에 먼저 발레로 만들어졌다.

발레 뤼스러시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파리에 창단한 현대발레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고국에 돌아와 1931년 영국 로열발레단을 창단한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발레리나 Ninette de Valois가 안무를 맡아 런던의 Sadler’s Wells극장에 올렸다(1935, Gavin Gordon작곡).

안타깝게도 Rex Whistler의 의상과 무대는 세계 제2차 대전을 겪으며 파괴되었다. 이 원작은 발레 이후 1945년 현대적 배경의 영국 영화 <악명 높은 신사>(Notorious Gentleman, Sidney Gilliat 감독)로 만들어졌고, 1951년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오페라가 되었다. 오페라보다는 발레가 윌리엄 호가스의 8개로 이루어진 그림 전체의 이야기에 좀 더 충실하게 제작되었다.

우리는 8개의 원작 그림을 통해 18세기 초 중반의 복식, 문화, 사회현상 등을 폭넓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주인공이 갇힌 감옥에 영국에서 경도 측정 방법을 알아내는 사람에게 경도위원회(1707)에서 내건 상금 2만 파운드현 시세 3백만 파운드로 한화 45억, 결국 John Harrison이 H4라는 크로노미터 시계를 제작해 경도 측정에 성공하면서 상금을 타갔다를 타기 위해 별을 관찰하는 용도로 창가에 망원경별을 이용해 위도를 측정, 경도 측정에는 실패이 표현되어 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술집에서 인사불성이 된 주인공으로부터 시계를 훔치는 여인들이 묘사되어 있다. 회중시계 크기인데 그 정도의 작은 크기로 만들어 들고 다니는 시계는 거액이 있어야 구입이 가능했다. 시계를 훔치는 여인들은 당시 치료약이 없던 매독균에 의해 올라온 염증을 가리기 위해 얼굴 여러 군데에 점처럼 화장을 하고 있다. 당시 상류층 남성들이 배우던 승마, 펜싱, 춤, 봉술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보이는 그림에는 그들이 고용한 경호원, 당시 영국에서 활동한 유명 음악가 헨델도 등장한다.

또 다른 그림에서 주인공은 유산을 받자마자 돈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 먼저 좋은 맞춤옷을 입고 다녔고 여인들은 누구나 야외에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혼잡한 길거리에는 좀도둑들과 소매치기들이 가득했다. 유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재정적 압박을 받기 시작한 주인공은 돈 많은 못생긴 노파와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 와중에도 신부의 하녀에게 한눈을 팔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결혼으로도 달라진 것이 없는 주인공은 도박에 빠져 하우스에 불이 난 줄도 모르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들어간 정신병원을 표현한 그림에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귀부인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녀들은 신기한 구경거리로 환자를 구경하러 온 것이고 당시에는 이런 행동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졌거나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은 구경거리가 되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1869)>왕의 정적을 제거하며 발생한 어린이 유괴사건을 다룬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모습에 영향을 줌에 잘 묘사되어있다.

영화<웃는 남자>를 보면 서커스 단장 우르스가 데리고 다니던 단원들은 모두 희귀한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는 이후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수염을 기른 여인 ‘Baba the turk’도 등장한다. 수염 난 여인은 원작에서 늙고 돈 많은 여인 역을 대신해 새롭게 만든 스트라빈스키 오페라만의 캐릭터다. 이 그림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판화로 제작됐는데 1975년 Glyndbourne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올라간 오페라의 의상과 무대 디자인은 David Hockney가 맡아 마치 원작 동판화의 컬러판을 옮긴 듯 원작에 충실히 제작됐다. 20세기 스트라빈스키의 환상적인 신고전주의 사운드와 18세기 영국의 잔혹 동화가 만나 탄생한 세기의 걸작을 감상할 기회가 당신에게 온다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우리는 여러 방법을 통해 지혜로운 인생을 배운다. 직접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함을 알면서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타인의 충고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우리 인생이다. 충고가 듣기 싫다면 그나마 이런 예술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배우는 차선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예술은 게으른 인간을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기에...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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