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프랑스인들은 음반과 서적을 구매하기 위하여 프낙(FNAC)이라는 대규모 체인점을 주로 이용한다. 트랜드의 변화 및 장기적 경기 부진으로 이전 같지 않지만 주말이나 퇴근 무렵에는 유동 인구가 몰리는 곳이다. 음반 매장에 들르니 한류는 지속되고 있었다. BTS와 블랙핑크가 여전히 한류 팬들에게 대세인 듯하다. 두 그룹이 있기 전에도 몇몇 주목할 만한 한류의 공신들이 있었다. 학자들은 종종 드라마 ‘겨울연가’를 그 시작점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지난 5월호에 기재되었던 인상파화가들 이전에는 어떤 화가나 화풍이 존재했었을까?
바르비종파
한국에도 유명한 바르비종파의 화가는 누가 있을까? 20~30년 전에는 흔하게 밀레의 ‘만종’을 볼 수 있었다. 농민들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 밀레의 작품 중에서도 ‘만종’이나 ‘이삭줍기’는 포스터나 엽서 형식으로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바르비종은 실제로 파리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주변에 퐁텐블로 숲과 퐁텐블로성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함께 방문한다. 퐁텐블로 숲에는 암벽이 많을 뿐 아니라 파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거진 수풀이라서 당시 화가들은 크게 매료되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야외에서 즉흥성을 가미하여 그린 풍경화들의 시초격이라 볼 수 있다. 때로는 종교의 색채를 담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풍경을 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농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테오도르 루소 Théodore Rousseau
루소는 밀레처럼 우리에게 친숙하지는 않다. 그는 187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린 시절 큰아버지를 따라서 쥐라의 산지에 갔다가 장엄한 자연의 풍경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네덜란드의 풍경화를 좋아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독자적인 풍경화풍을 추구하던 그는 1835년에 당시 프랑스 국전에 해당하는 살롱전에서 낙선 후 퐁텐블로의 수풀에 인접한 바르비종 마을에 머물렀던 기록이 전한다. 당시 그의 일상을 은둔생활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대세의 화풍을 멀리하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지켜왔던 화가의 강인한 예술혼을 짐작할 수 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2월 혁명으로 프랑스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고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불공정한 선거법에 대항하여 노동자,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판도가 뒤집어졌다. 이전까지 배척당했던 루소의 작품을 비롯한 사실적 풍경화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다시 말하면 1848년 혁명은 형세를 바꾸어, 이듬해 국전에는 다수의 작품이 출품 및 전시되었다. 정부에서는 <퐁텐블로 수풀의 출구>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밤나무 가로수 길
루소는 다양한 수풀의 모습을 담았다. 다양한 시간대와 계절을 담아 정말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분위기가 충분히 표현되었다. 특히 루소는 나무의 묘사가 탁월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마치 나무를 건축물처럼 세밀하게 관찰하여 이를 묘사하였다. 또한 그는 자연의 위대함, 장엄함, 그 웅장함을 찬미했으며, 자연이 담고 있는 깊이와 진실성을 중요시하였다. 이를 강조한 듯 파리의 프티팔레미술관에서는 전시의 부제를 ‘숲의 목소리’라고 정했다.
글 ㅣ 이화행 Inès LEE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파리 소르본 미술사대학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