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lection Rijksmuseum,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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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화가들에게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활기가 공존하는 정복의 대상이자 도달하고 싶은 목표지점 같은 곳이다. 19세기 파리는 예술의 수도로서 전성기를 누리지만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으며 유럽의 위상이 흔들리게 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뉴욕의 미술시장이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창작의 열기와 미술시장이 함께 공존하기보다는 세계 여러 도시에 산재해 있는 상황이 되어 어느 한 도시를 가리켜 예술의 수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 Photo Laurent Lecat. Kees Van Dongen, Adagp,Paris 2018
© Photo Laurent Lecat. Kees Van Dongen, Adagp,Paris 2018

다시 파리의 전성기로 돌아가 보면 파리의 명성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 그 영향력이 전파되었으며, 오늘까지도 그 여파를 느낄 수 있다. 풍차와 튤립으로 잘 알려진 나라인 네덜란드의 화가들에게 파리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중요한 예술의 중심지였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수많은 화가들이 파리를 거쳐가기 시작했으며 그 중 낭만주의 화가 아리 세퍼(Ary Scheffer)가 대표적이다. 또한, 19세기 중반에는 인상파에 지대한 영향을 준 화가 중 한 명인 종킨드(Jonhkind)가 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광기 어린 천재화가로 묘사되는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 야수파의 거장인 키스 반 동젠(Kees van Dongen)이 있고, 20세기 전반에는 차가운 추상화가인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모두 네덜란드 출신으로 파리를 거쳐 간 화가들이다.

© Vincent van Gogh Foundation
©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반 고흐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남달라서 삼촌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만 열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일하게 된다. 그가 파리를 처음 방문하게 되는 해는 1875년인데, 이듬해 그는 삼촌으로부터 해고된다. 한편, 그는 부모의 바람이었던 목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영국, 벨기에,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네덜란드의 라 하이에
(La Haye)에서 그림 실기 수업을 받게 된다.

초기에는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단조로운 색채의 풍경화와 농부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하였다. 반 고흐는 1886년에 파리에 두 번째로 체류하게 된다. 당시 그는 화가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터라 룩셈부르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을 보며 영감을 받았는데 특히 들라크루아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던 그의 동생 테오는 형 고흐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어서 반 고흐는 페르낭드 코르몽의 아뜰리에에 등록하여 수업을 받으며 그곳에서 에밀 베르나르, 앙리 뚤르즈 로트렉, 폴 시냑을 만나 친분을 맺게 된다. 그의 교우들의 영향으로 반 고흐의 작품은 현격히 변화하게 된다. 작품을 팔기 위한 극심한 노력에 지친 그는 1888년에 파리를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르로 향한다.

© Vincent van Gogh Foundation
© Vincent van Gogh Foundation

당시 그는 파리가 그를 우울함과 슬픔에 젖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아를르에서 고갱과 수개월 함께 작업을 하였으나 두 사람이 마찰을 겪게 되면서 고흐는 다시 파리로 와 동생 테오를 만난다. 그리고 1890년 5월 그는 파리 근교에 위치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는 7월 29일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혹자는 이를 자살로 단정지었으나 최근 이는 타살이라는 여론이 짙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1892년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몬드리안은 처음에는 바르비종파에 관심을 가졌으나, 이후 상징주의, 야수파 그리고 당시 동시대 작가의 흐름이라 일컬을 수 있는 표현주의에 큰 흥미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풍차 또는 추수해 놓은 짚더미와 같은 다소 전통적인 소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1908년부터 좀 더 혁신적인 예술가 단체들과의 교류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 Photo Peter Cox, Eindhoven, The Netherlands
© Photo Peter Cox, Eindhoven, The Netherlands

1910년, 그는 파리의 살롱전에 참여할지 망설이게 된다. 이듬해 페르낭드 레제와 로버트 들로네가 참여하는 살롱 데 앙데팡당전에 전시하고자 파리를 방문한다. 그는 곧 남다른 예술의 열기를 발견하고 1912년에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보면 조르쥬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그는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가 1919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몽파르나스 구역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다시 전쟁의 조짐이 보이자 그는 런던으로 이어서 뉴욕으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4년 후 생을 마감하였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통신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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