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얀 마테이코(Jan Mateyko; 1838~1893)는 1838년 6월 24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생애를 폴란드에서 보냈지만,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이후 1864년 파리에서 열린 대회를 통해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얀 마테이코는 폴란드의 역사적인 사건을 주제로 하는 사실적인 역사화를 전문으로 하였다. 마테이코의 그림은 폴란드의 분단으로 국력이 다소 부족했던 시기에 폴란드의 역사와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서 ‘국민 화가’로 불린다. 그의 작품으로는 《스탄치크(Stańczyk)》(1862), 《스카르가의 설교(Skarga's Sermon)》(1864), 《루블린 연합(Union of Lublin)》(1869) 등이 있다.
그가 그린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하느님 간의 대화(Astronomer Copernicus, or Conversations with God)》(1873)는 코페르니쿠스가 대성당을 배경으로 탑의 발코니에서 하늘을 관찰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마테이코는 코페르니쿠스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71년에 이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1473년 2월 19일 폴란드의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코페르니쿠스는 4형제 중 막내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이 1484년 작고한 후, 외삼촌인 바트젠로데(Lucasz Watzenrode)가 코페르니쿠스를 맡아서 키우고 그의 학업을 후원했다. 바트젠로데는 후에 바르민스키(Warminski) 지역의 주교가 된 인물이다.
코페르니쿠스는 1491년 그의 나이 18세에 폴란드의 수도 크라코프(Krakow) 대학교에 입학해서 신학, 수학, 천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1495년 외삼촌인 바트젠로데 주교의 도움으로 참사회의 위원으로 임명된다. 바트젠로데의 권유에 따라 코페르니쿠스는 1496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먼저, 볼로냐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하기 시작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유명했던 노바라(Domenico Mareia de Novara) 교수를 만났다.
이 시기에 코페르니쿠스는 수학과 천문학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까지 거의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우주론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이러한 그의 문제 의식은 후에 과학혁명을 가져오는 준비 작업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혁명(revolution)이란 말이 처음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앞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하느님 간의 대화》에서의 코페르니쿠스의 얼굴은 마테이코가 자신의 얼굴로 대신 그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마테이코가 묘사한 장소는 허구라고 한다. 대성당은 프롬보크(Frombork)라는 지역의 대성당과 흡사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했던 천문대의 정확한 위치는 현대에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마테이코는 코페르니쿠스가 탑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대는 그의 집 정원에 있었을 것으로 대부분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허구의 그림을 보고 "이 그림 사기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기죄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 성립할까?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죄이다. 사기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가져오려는 그 행위로 보자면 절도죄와 유사하다. 그런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절도죄와는 달리, 사기죄는 상대방의 기망에 의한 착오 있는 의사에 의해서 재물을 가져오는 것이다. 상대방이 속아야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누군가가 마테이코의 그림을 보고 생김새가 코페르니쿠스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거나 배경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여 깜빡 속은 경우라 하더라도, 마테이코가 이를 통해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그러한 측면에서 ”이 그림 사기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은 어떨까? 손님 A와 손님 B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닌,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손님 A는 가게 매장 안에서, 손님 B가 물건 구입 후 매장 바닥에 떨어뜨린 B의 지갑 1개를 가게 주인 C가 습득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손님 A는 가게 주인 C로부터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자, 마치 자신이 지갑 주인인 것처럼 행사하면서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하고 지갑을 건네받았다. 이후 손님 B가 이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여 손님 A는 절도죄로 기소된다. 그런데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피해자인 손님 B가 매장에 두고 온 지갑은 매장의 관리자인 가게 주인 C가 우선적으로 점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손님 A는 자신을 지갑의 소유자라고 착각한 가게 주인 C의 행위를 이용하여 그 지갑을 취득한 것이다. 따라서 손님 A는 가게 주인 C가 가지고 있는 B의 지갑을 탈취하여 절도함으로써 취득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가게 주인 C는 매장 고객이었던 손님 B가 놓고 간 물건을 습득한 자로서 적어도 C에게는이 지갑의 소유자인 손님 B에게 지갑을 반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게 주인 C를 기망하여 이를 통해 착오를 일으켜 B의 지갑을 손님 A가 취득한 이상 이는 사기죄의 사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식장 축의금 접수대에서 접수인인 것처럼 행세하여 축의금을 교부받아 가로챈 행위는 절도일까 사기일까? 무직자인 D는 신부 E의 결혼식장에서의 혼잡한 상황을 이용하여 신부 측 축의금 접수인인 양 가장 행세하였다. 이에 신부 E의 친구인 X, Y, Z가 무직자 D인 자신에게 축의금을 내어놓자 이를 수회 반복하여 받아 갔다. 검찰은 무직자 D를 사기죄로 기소하였다. 이에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결혼식장에서 신부 측 축의금 접수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무직자 D에게 신부 E의 하객인 X, Y, Z가 축의금을 내어 놓자 이를 D가 교부 받은 상황에서 하객 X, Y, Z가 축의금을 내는 취지는 신부 E 측에 전달하려는 생각만 한 것이므로 이를 무직자 D에게 준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단지 신부 측 접수대에 낸다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무직자 D는 사기죄가 아니라 신부측 접수처의 점유를 침탈한 절취행위로 절도죄라고 보았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변리사
문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