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의 참수 The Beheading of St. John, 1608
성 요한의 참수 The Beheading of St. John, 1608

 

[아츠앤컬쳐] 카라바조(Caravaggio, 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71~1610)는 바로크 회화를 혁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극적인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와 극단적 사실주의를 통해 종교화의 형식과 감정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천재성은 폭력성과 충동성이라는 어두운 개인사와 맞닿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로마 체류 시기인 1600년대 초반까지 15건 이상의 형사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그 중에는 명예훼손, 무기 소지, 상해, 폭행, 살인 혐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1606년, 라누초 토마소니를 살해하고 로마를 도망쳐 도피 생활을 시작해,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도시와 섬을 전전하며 이어졌다.

몰타: 체제 통합 시도와 실패
1607년, 카라바조는 몰타 섬으로 건너가 몰타 기사단에 입단하였다. 이는 단순한 도피가 아닌 명예 회복과 사면을 기대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는 기사단의 후원을 받아 〈성 요한의 참수〉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서명 작품이자, 극적인 구성과 감정 표현, 해부학적 정밀성이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사형 장면을 단순한 폭력이 아닌 인간 존재의 고뇌와 죄의식을 형상화한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그는 기사단 내의 갈등과 또 다른 폭력 사건으로 곧바로 투옥되었고, 탈옥 후 추방당하면서 몰타에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난다.

라자로의 부활 Raising of Lazarus, 1608~1609
라자로의 부활 Raising of Lazarus, 1608~1609

시칠리아: 예술적 성숙과 고립의 심화
몰타에서 추방된 그는 시라쿠사, 메시나, 팔레르모 등 시칠리아 주요 도시를 이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시칠리아 시기에 제작된〈성 루치아의 매장〉, 〈라자로의 부활〉, 〈목자들의 경배〉 등은 극단적인 어둠 속에서 인물들이 등장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지 명암 기법의 심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단절된 삶의 실존적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다. 시칠리아의 빛은 그에게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닌 정서적 도구였고, 이 시기 작품은 형식뿐 아니라 주제에서도 내면 탐구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포르토 에르콜레: 삶의 종착지
카라바조는 1610년 로마로 복귀해 사면을 받기 위해 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중, 토스카나 남부의 항구 도시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열병으로 사망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 유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며, 죽음에 얽힌 정황 역시 정치적 암살 가능성, 체포 과정에서의 과로, 단순한 병사 등 추정으로만 남아있다.

파괴된 예술혼을 되살린
카라바조에게 있어 섬은 도피의 장소가 아니었다. 몰타는 체제 안으로의 복귀를 시도했던 공간이었고, 시칠리아는 물리적·사회적 고립 속에서 예술의 근본 질문에 접근했던 공간이었다. 그는 섬에서 인간의 내면과 죽음, 구원,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탄생한 후기 작품들은 바로크 회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예술은 도시의 중심이 아닌, 사회와 인간의 경계에서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카라바조가 섬에서 얻은 것은 피난처가 아닌, 예술의 본질을 직시하는 통찰이었다. 이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목자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 1609
목자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 1609

 

Caravaggio, a revolutionary figure in Baroque painting, found in Mediterranean islands not mere places of refuge but critical spaces for artistic and existential transformation. His exile following a murder in Rome led him to Malta and Sicily, where isolation deepened his introspection and shaped his later masterpieces. Works like The Beheading of Saint John and The Burial of Saint Lucy reflect a heightened engagement with themes of suffering, redemption, and the human condition—intensified by the physical and psychological boundaries of island life. These experiences forged a unique artistic language that continues to resonate as a profound inquiry into the essence of existence.

 

글/ 박재아

박재아는 피지·사모아 관광청 한국지사장, 솔로몬제도 관광청 특별자문, 태평양관광기구(SPTO) 한국지사장,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한국지사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태평양기후위기대응협의회 사무처장이자 태평양학회 이사이며, 조선대학교 대외협력 외래교수로 해외대학들과의 교류협력을 담당하고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지역학을 전공한 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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