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섬은 흔히 외로움이나 고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섬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쓸쓸함을 넘어선 더 깊은 층위를 담고 있다. 자기 안의 세계로 자족할 줄 아는 내면의 충만함, 쉽게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깊이, 타협하지 않는 자기만의 기준, 외면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감정과 통찰, 그리고 외부와의 연결을 스스로 조절하는 독립적 태도. 이런 복합성을 품은 '섬'은 단절이 아닌 정체성의 은유이며, 고립이 아니라 존재의 고유함을 뜻하는 상징이다.
이처럼 물리적 섬인도 단지 ‘바다에 둘러싸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독립성과 다양성, 자기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세계가 담겨있다면 섬은 육지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자흐스탄은 '바다 없는 섬'이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내륙국이지만, 그 안에 펼쳐진 생태와 문화, 자연과 민족의 고유한 결은 독립된 리듬을 가지고 흐른다.
그 섬의 중심에는 알마티(Almaty)가 있다. 카자흐스탄 남동부, 톈샨 산맥의 품에 안긴 이 도시는 유목과 정착, 동서양, 전통과 현대가 나란히 공존하는 복합적 지형을 품고 있다. 눈 덮인 설산 아래 흐르는 계곡, 고산 호수와 고요한 초원, 실크로드의 흔적과 현대적 도시 감각이 충돌 없이 스며든다.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에 존재하는 문명 경계선 위에 떠있는 섬이다.
도시를 걷다 보면 이슬람 사원 옆에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자리하고, 소비에트식 건축물 옆으로 유럽풍 카페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질적 요소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어울리는 이 조화는 알마티만의 미감이며, 이는 카자흐 민족의 포용성과 다민족 문화의 역사적 층위를 반영한다.
오랜 세월 실크로드의 교차점으로 기능하며 동서양 문화의 교류지가 되어온 역사가 이 도시의 DNA에 새겨져 있다. 알마티는 자기 안에 담긴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무질서하게 방치하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감을 지녔다. 이는 유목민족의 영혼과 소비에트의 계획성, 실크로드의 개방성이 녹아든 독특한 성취다.
알마티는 아름답다. 그러나 풍경과 분위기만으로 알마티를 단정짓기엔 이 도시에 숨은 매력이 끝없다. 1970년대 소비에트 양식으로 지어진 공화국 궁전에서는 오늘날 발레와 클래식 공연이 이어지고, 아빌칸 카스테예프 미술관에는 유럽, 러시아, 카자흐 미술이 어우러진다. 중앙국립박물관과 우이구르 극장, 실험극장 등은 이 도시의 뿌리가 얼마나 다층적인지 보여준다.
극적이지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은 '경계를 아우르는'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힌다. 일레-알라타우 국립공원, 빅 알마티 호수, 일리강 협곡, 식물원, 고지대의 메데우 아이스링크와 쇼임불락 스키 리조트까지, 알마티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 문화와 생태가 일상으로 스며든 곳이다.
음악과 미식은 알마티의 고유성을 완성한다. 전통 악기 박물관에서 열리는 연주,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다양한 민족의 요리와 세련된 카페는 여행자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이 도시가 살아 숨쉬는 방식 자체이다.
카자흐스탄의 ‘다섯 손가락’이란 의미의 전통 음식 베쉬바르막과 러시아의 보르시치,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와 한국의 영향을 받은 요리까지, 알마티의 식탁은 독특하고 다채롭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이 카자흐스탄만의 고유한 해석을 통해 재창조되는 과정은, 이 '내륙의 섬'이 어떻게 외부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켜왔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알마티는 경계 위에 서 있지만 불안하지 않고, 혼합되어있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고유성과 복합성이 나란히 걷는 도시, 모든 이질적 요소가 나름의 질서로 공존하는 문화적 실험장이자 열린 섬이다.
Kazakhstan, often called the ‘island without a sea’ at the heart of Central Asia, is not defined by physical isolation but by its distinct cultural, ecological, and civilizational identity. Surrounded by land on all sides, this vast country embodies the metaphorical qualities of an island—self-contained, richly layered, and uniquely resilient. At the center of this inland island lies Almaty, Kazakhstan’s most vibrant and culturally diverse city. As the former capital and a historic crossroads along the Silk Road, Almaty serves as the converging point of nomadic heritage, Soviet legacy, and contemporary global influences.
It is here that the country’s diversity gathers and harmonizes—mosques and Orthodox churches, Soviet-era structures and European cafés, traditional music and modern art coexist in remarkable balance. Almaty stands not as the island itself, but as its cultural heart—a meeting ground where Kazakhstan’s pluralism finds expression, and where the rhythms of East and West, past and present, flow into a singular urban identity.
글 ㅣ카자흐스탄 관광홍보대사 Daisy Park(박재아)는 20여 년간 섬의 지속가능 관광과 문화다양성 보전에 헌신해 온 ‘Islomaniac(섬에 매혹된 사람)’이다. 카자흐스탄의 복합적인 문화와 자연을 고유한 정체성으로 브랜딩하며, 그 안에 담긴 다문화성과 생태적 가치를 한국 사회에 알리는 문화외교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피지·사모아 관광청, 태평양관광기구(SPTO), 인도네시아 관광부 한국지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태평양기후위기대응협의회 사무처장, 태평양학회 이사, 조선대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후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지역학 석사를, 환경대학원에서 섬의 지속가능 발전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