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ie Bradley

Leonie Bradley, Handle with Care, 2025, Woocut, linocut, gampi, cardboard boxes, 235x140x127cm
Leonie Bradley, Handle with Care, 2025, Woocut, linocut, gampi, cardboard boxes, 235x140x127cm

 

[아츠앤컬쳐] ‘LIVE ANIMALS’라는 문구가 찍힌 골판지 상자 위에 낯선 동물들이 인쇄되어 있다. 영국 작가 레오니 브래들리(Leonie Bradley)의 설치작 《Handle with Care》는, AI가 생성한 불가능한 네 발 동물(quadrupeds)의 이미지를 전통 판화 기법으로 전사해 운송용 상자에 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들이 부피와 무게를 얻는 이 장면은 시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브래들리는 고전 동물 백과사전의 설명문을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에 입력해 얻은 왜곡된 형상을 목판화로 재현해왔다. AI의 오류를 그대로 시각화하는 동시에, 인간의 기억과 창작이 알고리즘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탐구한다. 이 작업에서 디지털 환영은 목판이라는 느린 아날로그 매체에 새겨지며, ‘기록’과 ‘주권’에 대한 예술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 기이한 동물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담고 있는 상자다. 작가는 이 상자를 통해 AI에 대한 인간의 통제 욕망을 시각화한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윤리적 장치가 미비한 기술의 현실을 ‘포장’이라는 은유로 비판하며, 그 안에 감각의 왜곡과 창작자의 불안, 주체성의 흔들림이 겹겹이 담겨 있음을 드러낸다. 상자 속 존재들은 기술이 우리 손을 떠나기 직전, 통제와 방임의 경계에 선 듯한 모습이다.

《Handle with Care》는 단순히 기이한 생물의 형상을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적 존재들과의 관계, 기억의 위기, 감각의 주권을 되묻는 은유적 장치이며,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불완전한 초상이다.

 

글 | 최태호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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