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nora Vingyte
[아츠앤컬쳐]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다이노라 빙기테(Dainora Vingyte)는 목판화를 중심으로 디지털 시대의 시각 문화와 정보 과부하, 그리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작업을 이어왔다. 그녀의 작품에는 늘 ‘이미지의 힘’과 ‘이미지의 왜곡’이라는 두 축이 공존한다. 전통 판화 기법의 느린 호흡을 유지하면서도, 주제는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에서 마주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혼란이다. 2020년작 〈The Reality Show, Translation Error (Duet)〉*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화면은 파편처럼 흩어진 이미지들로 구성되며, 뉴스 속보, 음모론, 그리고 무해해 보이는 고양이 영상까지 한 화면 안에 병치된다. 이는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번 경험하는 온라인 피드의 감각과 닮아 있다. 시작점은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지구는 평평하다”라는 한 문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인터넷상에서는 ‘얼마나 크게 말하느냐’가 진실보다 우위를 점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지는 곳곳에서 튀어나오듯 배치되어 시선을 계속 이동하게 만들며, 이는 채널을 돌리거나 무한 스크롤을 하는 듯한 체험을 재현한다. ‘듀엣’이라는 제목은 미디어와 소비자가 각자의 몫을 연주하며 만들어내는 합작 공연을 암시한다. 그 끝에 남는 것은 피로, 무감각, 그리고 더 가벼운 콘텐츠로의 도피 충동이다. 작품 속 혼란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고 재생산한 결과임을 상기시킨다. 목판화의 느린 제작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디지털 이미지와 대조되며, 정보 소비 속도에 대한 은유적 저항이 된다. 그 느림은 관람자의 시선도 잠시 멈추게 하고, 혼란 속에서 ‘진짜’를 포착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빙기테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람자를 불편함 속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진실을 가려내는 첫걸음임을, 이 작품은 잔잔하지만 분명하게 전한다.
글 | 최태호
독립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