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아
사모아

[아츠앤컬쳐] 매년 10월이면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Samoa) 해안가에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동 트기 전 새벽, 온 마을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며 한껏 멋을 낸다. 손전등과 그물을 든 그들은 바다로 향한다.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들이 찾는 것은 팔롤로(Palolo)1년 중 단 며칠만 만날 수 있는 바다의 선물이다.

팔롤로는 태평양 산호초에 사는 갯지렁이다. 번식기가 되면 생식 세포로 가득한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사람들이 채집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놀라운 점은 출현 시기가 정확하다는 사실이다. 보름달 이후 7일째 되는 새벽. 올해는 10월 13~14일과 11월 12~13일, 오직 4일뿐이다.

팔롤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황당한 가격 때문이었다. 사모아 마트에서 300그램 남짓한 통 하나가 무려 20달러였다. 그마저도 거의 다 팔려서 두세 개밖에 안 남았다. 사모아 물가를 생각하면 특등 한우 한 근 수준이다. 수요가 높은 호주에서는 두세 배를 더 줘도 물량이 달려 구하기 어렵다. 가격은 매년 더 치솟는다. 고가에 거래되면서 채집 수요가 늘어나고, 산호초 파괴와 기후변화로 팔롤로 개체수는 급격히 줄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팔롤로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마을 사람들끼리 두루두루 나눠 먹던 별미가 이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가의 식재료가 되었다.

값이 아무리 올라도 사람들은 팔롤로를 끊지 못한다. 캐비어를 닮은 짭짤한 풍미, 홍합과 전복을 섞어놓은 듯한 맛에 쫄깃한 식감까지. 갓 채집한 것을 날로 먹거나, 버터에 볶고, 타로 잎에 싸서 굽는다. 팔롤로라는 이름 자체가 ‘기름지다’는 뜻의 사모아어 ‘롤로(lolo)’에서 비롯됐다.

팔롤로 맛이 궁금하다고 말했더니, 주사모아 한국 명예영사이자 친구인 제리 브런트(Jerry Brunt)가 이 귀한 것을 태양초 고추장 통 한가득 담아왔다. 찍어 먹으라고 담백한 과자까지 준비해 왔다. 너무 감동이고 감사했다. 하지만 파란색, 녹색, 갈색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자꾸 생각나 한 조각 이상은 도저히 먹지 못했다.

하지만 사모아 사람들에게 팔롤로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옛날에는 팔롤로가 물 위로 떠오르면 새해가 시작되었다. 전통 달력에는 ‘첫 번째 팔롤로의 달’이라는 뜻의 팔롤로마무아(Palolomua)와 ‘마지막 팔롤로의 달’인 팔롤로물리(Palolomuli)가 있었다. 자연이 시간을 알려주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팔롤로 채집은 축제다. 가족이 며칠 전부터 그물을 손질하고, 새벽에 함께 바다로 나가며, 다음 날 마을 전체가 모여 잔치를 연다. 미처 팔롤로를 잡지 못한 이웃 마을에도 나눈다.

1년에 4일, 새벽 몇 시간만 주어지는 기회. 그래서 비싸고 귀하다. 하지만 팔롤로의 진짜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 달의 움직임을 읽고 바다가 허락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함께 그물을 던지고 나누는 시간. 팔롤로는 바다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질문이다.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 선물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박재아는 ‘섬 좋아서 섬 일하는’ 섬 전문가(Islandophile)로, 지난 20여 년간 남태평양에 위치한 피지, 사모아 관광청 및 21개의 태평양 도서국 및 자치령을 관할하는 태평양 관광기구(SPTO), 그리고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한국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모리셔스, 팔라우, 크로아티아관광청의 파트너이자, 조선대학교 대외협력교수, 태평양학회 이사직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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