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성악진, 최고의 무대제작예산,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자랑하는 넘버원 오페라극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뉴욕의 메트(메트로폴리탄 오페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나라 전체의 오페라극장 총합과 평균에서 독일에 훨씬 못 미칩니다. 독일은 메트에 거의 근접하는 세계 최정상 오페라극장이 적어도 5개는 있습니다. 뮌헨의 바이에른국립오페라, 베를린국립오페라, 베를린도이체오페라, 함부르크오페라, 드레스덴오페라, 슈투트가르트오페라 등. 그런데 지구상에서 하룻밤 사이에 오페라공연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야외오페라의 대명사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공연장입니다.”
[로렌조 타치에리, 오페라지휘자]
베로나에 야외오페라 공연장이 들어서게 된 사연
1913년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가수 죠반니 제나텔로는 공연기획자 오토네 로바토와 함께 여행하다가 우연히 베로나를 들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전역은 전쟁과 폭격의 피해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제나텔로는 당시로서는 폐허로 아무도 돌보지 않던 베로나의 아레나(원형경기장)에 들러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함께 왔던 지인이 원형경기장 저 반대편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또렷이 자신의 귀에 들리더라는 것이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어떻게 야외에서 음향이 이렇게 선명할 수가 있지? 이에 놀란 그는 친구에게 이번에는 저 멀리서 동전을 떨어뜨려 보라 했다. 역시 선명하게 들렸다. 제나텔로는 무릎을 쳤다. “여기서 오페라를 해야겠다!” 그의 이 꿈은 오늘날 단일 공연장으로 하룻밤에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하고 가장 많은 티켓판매수입을 기록하는 전설을 만들어낸 베로나 아레나(Arena di Verona)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1913년 여름의 일이다.
로마의 검투장에서 야외오페라 공연장으로
아레나(Arena)는 관객들이 빙 둘러싸인 객석에서 중앙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경기장이나 공연장을 말한다. 대체로 완전한 원형보다는 타원형(달걀모양) 또는 반원형이 많은데 오늘날에는 아레나와 야외공연장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통용된다. 보통 록그룹이나 팝스타의 공연장에 많이 사용되는데 야외오페라공연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베로나 아레나이다.
베로나 아레나는 1세기경 로마시대 때 지어진 것이다.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로마는 상대국을 침공하여 노예로 만드는 대신 그들을 적극적으로 로마에 동화시키는 정책으로 튼튼한 세계경영을 이어나갔다.
한편 로마인들에게 최대의 스포츠이자 엔터테인먼트는 바로 검투경기이고 그 경기장이 바로 아레나였다. 한 번에 수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이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전투노예들의 살벌한 “검투경기”는 로마인들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로마는 이러한 오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전 유럽에 수많은 크고 작은 아레나를 지었는데, 마이크와 스피커 등 확성기가 없던 시기라 당연히 건축 자체에 의한 자연음향을 완벽하게 아레나에 구현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였던 것이다.
검투사 간, 검투사와 맹수 간 검투경기의 재미가 극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도 자연음향구현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맹수의 몸을 가를 때 광적인 로마시민들은 환호했다.
역사는 흘러 로마가 망하고 잔인한 검투경기가 사라지자 아레나는 홀연 그 존재 이유가 희미해졌다. 어느 도시에서는 그저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되었고 어느 도시에는 마을시장 정도로 쓰였다. 베로나의 아레나도 바로 황폐하게 존치되어 있었던 것이 제나텔로의 혜안으로 오페라극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야외오페라의 상징, 베르디 <아이다>와 베로나
베로나 오페라페스티벌의 시작은 1913년 8월 10일 베르디 탄생 100주년기념 <아이다>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 4~5편의 오페라를 페스티벌 형식으로 올리는데 올해는 6월22일부터 9월1일까지 <카르멘>, <아이다>, <투란도트>, <나부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한다. 특히 <아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역사적 의미가 커서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오리지널에 충실하게 무대에 올리고 있다.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역사적인 <1913년 아이다>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
전 세계에서 베로나로 몰려든 관광객들과 오페라애호가들이 여름밤 9시 45분부터 시작하는 이 명품 야외오페라를 즐기는 풍경은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으로 넘쳐난다. 확 트인 널따란 무대 위에 수평으로 시야를 압도하는 무대, 막 시작마다 거대한 징을 울리며 독특한 세레모니를 이어가는 중에 관객들은 연인, 가족들과 함께 때로는 연출과 가수들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는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며 야외 오페라를 즐긴다. 최대 수용인원은 30,000명이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통상 1회당 15,000명을 수용하는 이 공연장은 미국이나 한국의 대도시에서 가족과 연인 단위로 프로야구를 즐기는 문화를 연상시킨다.
베로나 오페라의 세계적인 명성으로 인해 매년 여름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중요 공연에서는 세계적인 스타 성악가를 초청하여 골수팬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또한, 플라시도 도밍고나 안드레아 보첼리, 폴 매카트니 같은 슈퍼스타의 단독 특별공연을 팬서비스 차원에서 마련하기도 한다.
베로나의 행복한 고민과 오페라의 미래
한 해 평균 약 500,000명의 관객을 맞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버는 오페라공연장 베로나! 엄격한 역사와 전통 때문에 베로나에서는 절대 마이크와 스피커를 쓰지 않는다고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만, 천하의 베로나도 수만 명의 초보 오페라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2011년부터는 간접적인 음향보정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초보자들이 방문하기에 아무래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올리기보다는 <아이다>, <나부코>, <리골레토> 등 인기작품을 매년 반복적으로 공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주최 측의 말 못할 고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페라를 여전히 귀족들과 부호들의 사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야구를 즐기듯 오페라를 즐기는 베로나의 오페라 소비문화는 계속 소중하게 보존되고 확대되고 있다. 오페라는 결코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품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대중예술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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