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오케스트라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페라를 진흥하려는 노력과 예산이 너무나 적습니다. 유럽의 극장문화의 핵심은 오케스트라콘서트라기보다는 오페라극장입니다. 오페라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원한에 의한 살인, 정략결혼 등 그 내용은 대부분 '아침드라마' 수준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의 가사는 모두 아름다운 시입니다. 한글 가사와 함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 베를린의 지한파 음악평론가 마티아스 엔트레스
서베를린이 발전시킨 오페라극장 베를린 도이체오퍼
인류가 발명해낸 수많은 문화유산 중 오페라는 공연예술 종합선물세트다. 파리, 런던, 뉴욕, 빈 등 주요 도시들은 오페라를 순수공연예술의 글로벌스탠더드 장르로 인식하고 오랫동안 여러 방식으로 보존, 발전시켜왔다. 오늘날 자기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오페라를 선진국들이 많은 돈과 노력을 써가며 다각도로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현상은 <오페라를 발전시키는 나라가 곧 글로벌리더>라는 논리를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오페라를 가장 강력하게 전면적으로 육성, 진흥하고 있는 곳은 오페라의 종주국 이탈리아도 아니고, 초호화 캐스팅과 최고의 프로덕션을 보여주는 뉴욕(메트), 런던(코벤트가든)도 아닌, 바로 독일 베를린이다. 독일정부는 동서독 분단 전 프러이센의 궁정오페라로 시작한 베를린국립오페라(슈타츠오퍼)를 재부흥시키기 위해 30년 전부터 스타 지휘자 바렌보임을 불러들이고, 최근 7년간에 걸친 리노베이션을 통해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의 오페라극장으로 재출범시켰다.
한편 전후 동서독 분단 시절 동베를린의 베를린국립오페라에 대항하기 위해 건립한 서베를린의 <베를린도이체오퍼>는 바로크양식의 중형극장인 슈타츠오퍼와는 대조적으로 2,500석 대규모에, 현대적인 회색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한 도시 내에서의 건축양식의 다양성 균형’을 잘 지키고 있다. 파리가 기존 전통양식의 오페라(가르니에)에 이어 두 번째 메인 오페라극장인 바스티유를 근대적 건축물로 지은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도이체오퍼는 특히 연출가 괴츠 프리드리히가 총감독으로 있던 시기(1981~2000)에 중부유럽 최상급 오페라극장으로 군림하였는데, 프리드리히 자신이 연출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화가겸 세계적인 오페라연출가인 아킴 프레야가 선보인 <베르디 레퀴엠> 프로덕션 등은 세계 오페라계를 뒤흔든 명작들로 기록된다.
세계오페라계의 강자 중의 강자, 베를린 코미쉐오퍼
표준 이탈리아, 프랑스오페라를 귀족적인 맥락에서 많이 올린 베를린슈타츠오퍼, 독일이나 동구권, 러시아 근현대 작품들을 통 크고 뚝심 있게 올린 베를린도이체오퍼 이러한 2중 라이벌 구도에 베를린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오페라 보석이 있으니 바로 모든 오페라를 ‘독일어로만’ 올리는 베를린코미쉐오퍼다.
기원으로 보면 1892년까지 올라가는 이 오페라극장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글로벌예술 오페라를 독일의 입장에서 계승 발전시킨다”고 하는 사명감 아래 전후 동독 정부가 연출가 발터 펠젠슈타인을 임명하여 확립시킨 극장인데, 우리 국립오페라단의 한해 6~7개 작품에 20~30회 공연도 많다고 느끼는 관계자들에게는, 독일어로만 한해 200회 공연을 하는 이 코미쉐오퍼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코미쉐오퍼는 최근 30여 년 동안 유럽의 오페라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덕션으로 수차례 홈런을 친 오페라극장(약 1000석 규모)이다.
특히 내년 9월부터 베를린필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키릴 페트렌코는, 바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이곳 베를린코미쉐오퍼의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놀랍도록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줘, 세계적인 명성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를 지휘하고, 뮌헨의 바이에른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 시절 페트렌코와 함께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 호주 출신의 연출가 배리 코스키는 곧바로 2012에 코미쉐오퍼의 총감독에 임명되었는데, 취임작품으로 코스키팀이 내놓은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전 세계 오페라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오페라의 시조로 불리는 몬테베르디의 유명한 세 작품 <오르페오>, <율리시즈의 귀환>, <포페아의 대관>을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에 공연하는 전대미문의 프로젝트였으며, 역사상 단 한 번뿐인 시도로 기록된다.
그뿐만 아니라 배리 코스키와 씨어터그룹 ‘1927’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1920년대 무성영화와 애니메이션 혼합스타일로 연출하여 최근 세계오페라계를 또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상애니메이션과 아날로그적 연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지금껏 어떤 오페라극장도 보여주지 못한 매혹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글로벌화제가 된 이 작품은 벌써 LA오페라, 로마오페라극장, 상하이오페라극장 등에 초청되어 원정공연을 가졌고 세계 주요도시에서 영상으로 소개되어 열광적 찬사를 받고 있다.
잘츠부르크와 루체른을 향한 문화선전포고 “베를린 뮤직페스티벌”
순수예술을 적극 진흥,발전시켜 글로벌리더국가 위치를 선점하려는 독일 베를린에서 최근 눈여겨보아야 할 또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는 바로 <베를린뮤직페스티벌>이다.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월드톱오케스트라가 10여 개 연달아 공연하는 페스티벌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스위스 루체른 2곳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베를린이 <
베를린뮤직페스티벌>로 최근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 있어서 글로벌 넘버원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이 빈필을 전면에 내세운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클래식축제라면 <베를린뮤직페스티벌>은 쉽게 말해 베를린시가 베를린필을 전면에 앞서운 대규모 오케스트라페스티벌(매년 9월초 3주간)이다. 2017년에는 베를린필, 베를린슈타츠카펠레, 암스테르담콘서트헤보, 잉글리쉬바로크솔로이스츠 등 초호화 스타군단이 이 페스티벌을 거쳐 갔다.
돈이 먼저냐, 문화가 먼저냐
온 나라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대한민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순수문화예술을 진흥하고 보존”하려는 독일 베를린의 최근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년 내내 수많은 최고급 문화행사, 오페라, 콘서트와 볼거리로 넘쳐나는 베를린에 외부방문객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선진국문화예술의 바람직한 모델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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