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페스티벌의 지존(至尊)

페스티벌 대극장 내부
페스티벌 대극장 내부

[아츠앤컬쳐] 벌써 십여 차례 여름축제 기간 중 잘츠부르크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이들의 <최고급 컨텐츠>에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잘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올해 페스티벌의 여러 톱 공연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리카르도 무티와 수퍼히로인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하는 오페라 <아이다> 공연이 있던 밤이었다. 이미 지인을 통해 이번 <아이다>공연의 연출이 모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나는 곧바로 대극장 옆에 있는, 오페라극장 모차르트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스타 타악기 주자 마틴 그루빙어와 친구들의 실내악 연주 그리고 후반부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연주의 말러 <대지의 노래> 챔버버전 콘서트(7.19)를 관람했다. 정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알찬 프로그램이었다.

잘츠부르크축제 대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도 "잘츠부르크급"이 된다!
다음날 일요일(7.20) 11시, 대극장으로 들어왔다. 바로 올해 오케스트라 공연의 메이저 지휘자 중 한 사람인 거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지휘, 빈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마에스트로, 오케스트라, 음향, 관객 모두 최고의 연주와 매너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100명이 넘는 거대한 편성의 빈필이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대 작곡가 브루크너를 대극장에서 연주한다는 공연정보 자체만으로도 이미 필자는 엄청난 감동을 몸으로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로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로고

한 악장 20분이 넘는 대 심포니가 진행되는 동안 전 세계에서 몰려든 2,500명의 럭셔리 관객들은 숨죽여 이 음향의 황홀경에 함께 했다. 한 시간이 넘는 대 심포니의 4악장이 끝나자 당연히 전원기립의 박수 세레머니가 이어졌다. 그런데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벌써 15년 넘게 페스티벌의 이사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인 헬가 라블-슈타틀러여사가 박수 중 무대 위로 나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블롬슈테트에게 화환전달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바로 올해 90세 생일을 맞는 블롬슈테트를 모든 관객이 보는 앞에서 한없이 치켜세우더니, 2027년 100세 생일 때에도 반드시 빈필을 지휘해달라고 하며 스웨덴색상으로 빛나는 거대한 꽃다발을 전하자, 아직도 정정한 블롬슈테트는 아이처럼 뛸듯이 기뻐했고 객석은 다시 한 번 전원 기립에 박수와 환호의 홍수가 되었다. 역시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의 경쟁력은 오스트리아 전체의 경쟁력"
이제는 한국에서도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고급음악축제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오늘은 그 음악적 내용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보자.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의 고품질의 대표적인 요인은 당연히 세계최정상 빈필에 있다. 빈필은 페스티벌 상주오케스트라로 있으면서 대부분의 오페라 반주부터 심포니공연까지 수십 회의 공연을 소화한다. 거기에 베를린필,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웨스트이스턴 디반오케스트라, 피츠버그심포니 등 월드톱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연일 계속된다. 또 지난 2006년 탄생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건립된 오페라극장 “모차르트하우스”, 그리고 전임 총감독 알렉산더 페라이라팀이 새로 출범시킨 교회음악 위주의 <오버처 스피리추얼>(Ouverture Spirituelle) 등의 영향으로 과거보다 훨씬 그 부피가 커졌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메인 공연장 앞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메인 공연장 앞

잘츠부르크의 모든 공연프로그램은 <오페라>, <연극>, <콘서트>, <어린이&청소년>(교육) 이렇게 크게 4 카테고리로 분류되며, 각 카테고리 내에 다시 10여 개의 소분류로 각각의 공연들이 묶여 그야말로 최고급 공연의 연속이다. 올해만도 유명한 대극장부터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니처공연인 돔플라츠의 연극 <예더만> 그리고 근교 페르너인젤의 오페라 <룰루>까지 11개 공연장에서 총 188회의 공연을 올렸다. 잘츠부르크의 품질경쟁력은 관객들을 유인하는 스타마케팅과 철두철미 진보적인 비대중적인 현대음악과 예술을 최전선에 배치하는 과감함에서 더욱 빛난다. 이것은 아직 신생이라서 수지타산의 결과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우리나라 지자체의 페스티벌들이 근본적으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대개의 음악전문가들도 잘츠부르크에서 워낙 풍성한 최고급 공연들이 연중 이어지기 때문에 잘츠부르크의 4개의 메이저 클래식음악축제를 혼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여름음악축제(대개 7월말부터 8월말까지)로 잘츠부르크페스티벌 재단이 운영하며 이들은 매년 성령강림절[오순절, 예수 부활 50일째 되는 날]에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페스티벌을 연다.

예술감독 마르쿠스 힌터호이저, 이사장 헬가 라블-슈타틀러, 경영감독 루카스 크레파즈
예술감독 마르쿠스 힌터호이저, 이사장 헬가 라블-슈타틀러, 경영감독 루카스 크레파즈

현재 성령강림절페스티벌(2018.5.18.~21, 4일간 8회공연)의 예술감독은 스타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다. 잘츠부르크페스티벌 다음으로 음악팬들에게 유명한 페스티벌이 있으니 그것은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Osterfestspiele Salzburg)로 이것은 카라얀이 창립하여 지금은 카라얀재단이 주최해오면서 대부분 베를린필이 상주오케스트라였다. 그러던 것이 2010년 발생한 스캔들의 여파로 베를린필과 결별하고 2013년부터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상주를 맡고 있고, 잘츠부르크를 떠난 베를린필은 독일의 신흥강호 바덴바덴페스티벌의 상주오케스트라로 이적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모차르트재단이 운영하는 모차르트주간(Mozart Woche, 매년 1월말부터 10일간 30회 공연, 2018.1.26.~2.4) 역시 빈필, 베를린고음악아카데미, 카메라타잘츠부르크, 잉글리쉬바로크솔리스트 등 세계최정상악단의 공연이 풍성히 열리는 월드클래스음악축제다.

잘츠부르크의 정상유지비결은 엄격한 품격관리와 고집스런 전통고수
유럽에 일 년 내내 관광객으로 인산인해인 곳이 많다. 로마나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곳이다. 잘츠부르크도 관광객이 넘쳐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잘츠부르크는 다른 관광도시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은 채 더욱 침착하게 최고급 품질과 청결 그리고 품격 매너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전통을 영악한 상술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진지함 또는 장인정신과 예술의 현대성을 우직하게 사수하려는 철저한 공공성이 오늘의 잘츠부르크를 만든 요소라고 생각된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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