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음악영웅
[아츠앤컬쳐] "당신은 클래식음악 마니아인데, 서울에서 1년동안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세계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공연 10여개를 한달동안 몰아서 볼 수는 없을까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번에 한 달간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답은 당연히 독일 베를린입니다. 베를린에는 베를린필(래틀/페트렌코), 베를린슈타츠카펠레(바렌보임), 베를린방송교향악단(유로프스키)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6개, 베를린 슈타츠오퍼, 도이체오퍼, 코미쉐오퍼 등 한 해 200회 이상 공연하는 정상급 오페라극장이 3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베를린은 물가가 쌉니다.”
베를린에 세계적인 음악단체가 많은 역사적 배경
파리, 런던, 빈, 뮌헨,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국가대표 문화도시들에는 대체로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3~4개, 정규오페라극장이 1~2개가 있는데, 베를린이 이들보다 더 많이 갖게 된 것은 독일 분단의 역사 때문이다. 즉 당시에는 나라가 2개였고, 서독정부가 동독지역에 섬처럼 자리 잡은 서베를린에 동베를린과의 문화경쟁을 위해 한쌍 씩을 더 만들게 되어, 통일 후에는 타 도시에 비해 두 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베를린에는 베를린슈타츠오퍼-코미쉐오퍼-베를린방송교향악단[동베를린], 베를린필-도이체오퍼-도이체방송교향악단[서베를린] 이렇게 두 쌍씩이 존재한다.
모두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극한의 경쟁 중이지만 그중 단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곳은 역시 오케스트라의 대명사 베를린필과 이번에 7년만에 리노베이션 끝에 재개관한 베를린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이다. 여기서 원래 프로이센왕국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단체는 베를린슈타츠오퍼, 베를린방송교향악단 등 구 동베를린의 단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휘자 하면 <카라얀>, 오케스트라 하면 <베를린필>
오늘날 전 세계에서 빈필과 함께 일반인에게까지 오케스트라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베를린필(음악감독 사이몬 래틀, 2018년 9월부터 키릴 페트렌코)의 명성은 지휘계의 황제로 불린 카라얀이 만들어냈다. 카라얀 자신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 동베를린과의 문화경쟁을 위한 서독정부의 적극지원, 음반 대량생산에 의한 클래식음악의 글로벌팽창 등이 맞물려 순식간에 베를린필의 명성은 세계 최고로 올라섰다.
종신지휘자 카라얀 서거 후 베를린필의 브랜드 가치는 아바도, 래틀로 이어지면서 계속적인 상승을 보였다. 특히 아바도 후임으로 뜻밖에도 영국의 마이너오케스트라였던 버밍험심포니를 재임기간 중 세계 정상급으로 만들었던 래틀을 선택했고, 베를린필은 프로그램과 운영에서 전 세계 오케스트라 음악계를 리드해왔다.
베를린필은 이번에도 러시아계 오스트리아 천재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를 2018년 9월부터 시작되는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택하는 또 한 번의 놀라운 결정을 해서 세계음악계를 발칵 뒤집었다. 래틀은 내년 6월 19~20일 양일간 말러 교향곡 6번으로 베를린필 정규시즌 고별공연(베를린필하모니홀), 6월24일 일반대중들을 위한 팬서비스음악회인 발트뷔네콘서트(야외음악회)를 끝으로 베를린시대를 마무리한다.
한편 베를린필의 홈그라운드 필하모니홀은 1960년대 초 카라얀과 함부르크 출신의 건축가 한스 샤로운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는데, 베를린필 특유의 객석 골고루 퍼지는 뛰어난 음향의 빈야드 스타일(객석이 마치 포도송이 모양으로 무대를 에워싼 모양새)은 이후 전 세계 1급 콘서트홀의 표준모델이 되었다. 최근 완성된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파리필하모니, 그리고 한국의 롯데콘서트홀 역시 이 빈야드 스타일이다.
베를린의 문화대통령 <바렌보임>과 그의 분신 <베를린슈타츠오퍼>
베를린의 또 하나의 음악영웅은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천재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베를린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이다. 뮌헨의 바이에른슈타츠오퍼, 드레스덴의 작센슈타츠오퍼(젬퍼오퍼)와 함께 오페라 최강국 독일의 지형도를 3등분하고 있는 베를린슈타츠오퍼는 18세기 프로이센왕립오페라극장으로 출발, 운영되어 오다가 동독 시절 약간의 침체를 맞았지만, 통일 후 독일정부가 오페라 재건을 위해 바렌보임을 음악감독으로 선택한 후 급속히 옛 영화를 회복했다.
그러다가 극장의 노후화 문제로 7년간 3,000억 원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단행해 재개관했다. 리노베이션의 핵심내용은 오페라극장 천장을 5m 위로 올려 음향을 개선하고, 객석 수를 1,400석에서 1,350석으로 줄인 것이다. 기존에 극장 뒤 무대장치 보관소는 지하로 옮기고,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로 20여 명의 음악학도(전액장학생)를 가르치는 초미니음대와 최고급 현대음악/실내악 전용 홀인 불레즈홀을 지어 운영 중이다.
필자는 이번에 지인들과 함께 바로 이 역사적인 베를린국립오페라 재개관 페스티벌
에서 2개의 공연을 봤는데,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슈타츠카펠레(베를린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의 거장 피아니스트 폴리니와의 협연공연(필하모니홀), 그리고 월드스타 지휘자 주빈 메타의 빈필공연(슈타츠오퍼무대)으로 두 공연 모두 세계클래식음악의 심장부 베를린의 위상을 보여준 최고의 공연이었다.
슈타츠오퍼의 공식 오페라시즌공연은 12월부터 시작되는데, 그 화려하고 진지한 프로그램과 출연진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내년 5월에 공연예정인 바렌보임 지휘, 롤란도 비야존 출연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벌써부터 전 세계 오페라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필자는 지난 베를린오페라여행에서 10월 5일 바렌보임과 폴리니, 1942년 동갑내기 두 스타천재음악가가 빚어낸 환상의 하모니를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슈만 피아노협주곡을 치며 관객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75세 할아버지 폴리니, 한국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전설의 거장의 모습을 10m 바로 앞에서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그의 한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가슴에 사무쳤었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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