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휴머니즘(humanism 또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은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이다.” – 위키피디아
휴머니즘은 지난 백 년간 영화뿐 아니라,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전쟁의 비극, 독재자의 횡포, 다수를 위해 희생된 소수 등–이런 이야기들은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범인류적 공감 능력은 인류가 지구의 절대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역설적으로 인간 중심의 사고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대형 동물들을(몸무게가 킬로그램 단위인 동물들)무게로 재면 90% 이상이 사람 아니면 가축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는 문명의 발전을 통해 많은 야생동물을 멸종시켜왔다. 거기다 가축들을 대하는 방식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인간 중심의 사고는 다른 생명체들의 행복과 생존권을 철저히 무시하며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폐쇄적으로 만들어 온 듯하다.
최근 다른 존재들과의 공생 혹은 갈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반복 등장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옥자는 돼지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에이리언: 코버넌트는 창조주와 창조물(창조주 이상의 능력을 갖춘) 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간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우리 스스로 울리는 경종인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혹성탈출 3부작(2011~2017)은 원조 혹성탈출(1968)에 대한 프리퀄이자 리부트 시리즈로 어떻게 유인원이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진화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리부트 시리즈는 인간이 아닌 주인공 침팬지 시저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우선 본 시리즈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
“진화의 시작(2011,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 제약회사 젠시스의 수석연구원 윌 로드먼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용 실험약은 유인원들의 지능을 높이는 반면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발생시키고, 이 와중에 실험실에서 태어난 주인공 유인원 시저는 실험약을 훔쳐 다른 유인원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유인원 보호소와 실험실을 탈출한다.
“반격의 서막(2014,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10년 후 인류는 바이러스로 인해 극소수만 남게 되는데, 비로소 인류의 객체 수가 농업혁명 이전 수렵채집을 하며 다른 생태계와 조화롭게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처음에는 시저와 인간은 공생을시도했다. 하지만, 과거 반복된 약물 실험의 대상으로서 트라우마를 겪은 또 다른 유인원 코바의 배신으로 결국 인간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만다.
2017년 8월 개봉되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은 시저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시저와 유인원들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나려 하지만 인간 군대를 이끄는 콜로넬 대령은 시저의 가족을 사살한다. 시저는 코바처럼 분노로 가득 찬 존재가 되어 복수에만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갈등하다, 콜로넬 대령과 인간들의 어리석은 결정을 보고 동료들과 함께 떠나기로 한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설명을 최소화하였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인류와 유인원의 생존을 건 전쟁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시저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 고아로 태어나, 똑똑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동료에게 배신당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하지만 영화 속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이 그저 설정이라고 느꼈다면 침팬지에게 공감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성탈출에서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원인은 철저히 인간 스스로로부터 나온다. 질병 치료의 실험약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고(1편: 진화의 시작), 동물 실험의 피해자였던 코바로 인해 유인원들과의 공생 관계가 깨어지고(2편: 반격의 서막), 최후에는 퇴화를 방지하고자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한다(3편: 종의 전쟁). 반면 유인원들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Home)을 찾아간다는 한결같은 목적을 추구한다.
이제 우리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의 공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 세상에서 동물들은 옥자나 시저처럼 지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계속 무시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위험으로 인해 자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속 시저는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Apes Together Strong).”라는 신념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이것을 우리를 위한 새로운 버전으로 바꾸어 보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함께 살아갈 때 강하다.”
글 | 도영진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대표, CJ E&M 전략기획담당 상무 역임, 보스턴컨설팅그룹 이사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