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실화에 바탕을 둔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히든 피겨스>를 봤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 경쟁을 하던 1960년대 시절 NASA에서 근무했던 세 명의 흑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같은 버스 안에서도 앞자리 뒷자리로 구분을 짓던 인종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흑인만이 아니라 여성으로도 차별받았던 그들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역경을 넘어 업적을 이룬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초반에 캐서린(타라지 P. 헨슨)과 NASA의 흑인 동료인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매리 잭슨(자넬 모네)이 함께 자동차로 출근하다 고장이 나는 바람에 길가에 서있게 된다. 권위적이고 차별적인 백인 경찰이 나타나 신분증을 요구한다. NASA에 근무한다고 하자 태도가 바뀌어 우주 경쟁에서 러시아를 이겨야 한다면서 회사까지 에스코트를 해 준다. 그 당시 흑인 여성이 경찰차를 따라 전속력으로 추격하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장면에서 인종이나 여성차별보다 냉전이 더 절박한 상황처럼 보였지만 전반적인 영화의 톤이 밝을 거라는 것을 암시했다.

영화는 우주 경쟁의 절박함이 있던 시절, NASA라는 특수 조직에서 있었던 인종 차별의 부당한 대우를 극대화하기보다 그런 고난을 주인공들이 극복하는 과정을 차분히 그리고 있다.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 자신만의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여성 계산원들의 감독 일을 하는 도로시는 여성 상사인 비비안 미첼(커스틴 던스트)에게 정식 감독으로 승진을 요구하지만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받고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매리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지만 되기 위해 이수해야만 하는 학과 공부가 흑인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에 검산원으로 간 캐서린은 까칠한 백인 상사 폴 스태포드(짐 파슨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려 미국을 염탐할 수 있다는 사실에 NASA가 로켓 개발 경쟁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상황들로 바뀐다. 결국, 차별 철폐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발 책임자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은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일들이 업무를 방해할 경우 바꿀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세 명의 주인공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실력을 볼모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통쾌했다. IBM 컴퓨터가 설치되고 계산원 모두 실직될 위기에 처했을 때, 도로시가 포트란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공부하고 다른 계산원들을 교육시킨다. 결국 그녀들을 새로운 데이터 센터로 옮길 때는 가슴이 후련했다.

IBM컴퓨터가 존 글랜을 태운 우주선 발사를 앞두고 전날과 다른 계산을 하면서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을 불안하게 할 때, 우리는 캐서린을 필요 없다고 쫓아낸 해리슨이 미웠다기보다는 진정한 수학 천재인 그녀가 필요한 상황이 왔다는 것이 반가웠다. 물론 그녀가 전날 사무실을 나갈 때 그동안 차별대우를 했던 동료들이 그녀에게 결혼 선물로 진주목걸이를 사줬지만 어쩌면 이것은 영화적인 설정이 아니었을까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이 심했던 시절 그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은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심했을 수도 있다. NASA의 체면도 있으니 덜 고약하게 그린다는 타협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캐서린, 도로시, 매리 3명 모두 자신의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그들은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고 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고치게 한 것이 더 멋있어 보였다. 물론 사회적인 변화가 함께 진행되었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겠지만 사람의 생명이 달린 과학계에서도 차별이라는 것에 대해 구성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의아했다. 알 해리슨이 유색인종 화장실 팻말을 망치로 떼어내면서 “여기 NASA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색의 오줌을 눈다.”고 했을 때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려 그랬을까 아니면 캐서린의 계산을 효율적으로 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을까?

물론 그 후 그는 캐서린을 회의에 참석시키고 발사 장면을 함께 하는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그도 갑작스럽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변화에 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더 개선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사회성 영화가 웅변조로 바뀌지 않고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의 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녀들이 부당한 대우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영화 속과 마찬가지였다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들을 전후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잘 엮어 가면서 빈 곳에 알맞은 상상을 더 해 자연스럽게 만든 것은 감독의 미덕 같다. 실제 개발 책임자 해리슨이 화장실 팻말을 망치로 떼어내는 장면은 영화적 상상을 위한 허구였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글 | 강인식
전 KBS, SBS PD, 전 싸이더스FNH 대표, 현 kt미디어 콘텐츠담당 상무
ilpas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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