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스토리텔링의 귀재라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를 봤다. 원제가 <Split>인데 유지태가 출연한 한국영화 <스플릿>과 같은 데다 존 쿠삭의 <아이덴티티>를 연상시키려 바꾼 것 같다. 처음 시작은 클레어(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생일파티 장면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는 클레어와 친해서가 아니라 동정을 받아서 초대되었다. 클레어는 아빠에게 케이시가 학교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하며 버스 타고 가겠다는 케이시를 집에까지 바래다주자고 한다. 케이시와 클레어 그리고 다른 친구 마르샤(제시카 술라)가 클레어 아빠 차에서 기다리던 중 23개의 인격을 가진 케빈(제임스 맥커보이)에게 납치된다.
좁은 방에 3명의 소녀를 납치한 케빈은 먼저 마르샤를 방 밖으로 끌어내 자신을 위해 춤을 추게 하지만 그녀는 오줌을 지려 바로 돌아온다. 클레어는 뭉쳐서 싸우자고 하고 케이시는 단체 행동을 하기 전에 왜 그들이 납치되어 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어린 케이시와 아빠 그리고 삼촌의 곰 사냥 회상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1977년 납치 강도강간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빌리 밀리건이 24개 인격을 가진 정신병을 겪다 1988년 풀려난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는 공포스런 요소다. 같은 모습의 사람이 이런저런 사람으로 행동을 하니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진실을 알 수 없으므로 무서울 수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 캐런 플래처(베티 버클리)박사가 세 명의 소녀가 납치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는데 메일이 온다. 배리(제임스 맥커보이)가 보낸 것으로 대화가 필요하다며 급하다고 한다. 캐런 박사는 배리를 만나 밤늦게 급히 메일을 보낸 이유를 묻지만 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패션 스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떠난다.
영화는 이런 다중인격체와 세 소녀 그리고 캐런 박사의 대결을 그리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맥커보이의 순간순간 변화하는 인격에 따라 연기하는 인물의 그럴듯함이 단조로움을 상쇄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 해리성 인격 장애가 실생활에서 어느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지를 모른다면 그리 큰 매력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밀리건은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아랍어와 아프리카어, 크로아티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전문가 수준의 수학 물리학 등의 지식을 보유하고 전자제품도 능숙하게 다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한 인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격일 때 일어나는 각각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23 아이덴티티>에서도 어릴 때 학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케빈과 강박증을 앓고 있는 데니스, 여성성으로 나타난 패트리샤, 예술적 감각의 배리, 천진난만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헤드윅, 당뇨 환자인 제이드, 그리고 이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며 구원해 줄 비스트 등 다양한 인격들이 나타난다. 한 명의 몸속에 다양한 감정이 아닌 다양한 인격들이 들어 있으며 그들의 생각에 따라 자신의 몸의 화학적 상태까지도 바꿀 수 있으며 그들 각 인격은 다른 인격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졌다고 캐런 박사는 영상 컨퍼런스를 통해 이야기를 한다.
영화 속 제이드가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 자신만 당뇨병을 앓는 것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영상이 나온다. 영화야 감독이 만드는 허구의 세상이므로 모든 이야기가 검증되든 아니든 감독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 하지만 다른 인격체일 때는 당뇨 환자가 아니라면 몸 속에 들어간 인슐린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캐럴 박사의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몸의 화학적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면서, 후에 데니스(매커보이)가 열차 차량 안에서 비스트로 변화하는 것의 복선이 된다.
영화는 마지막 씬에 출연하는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이 누군가의 질문에 “미스터 글라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언브레이커블>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브루스 윌리스가 샤말란 감독과 많은 영화를 같이 해서도 그렇지만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언브레이커블>에 나오는 세상의 악당에는 힘으로 싸우는 전사형 악당이 있고 머리로 싸우는 괴수형 악당이 있다고 하는 대사와 더불어 혹시 <언브레이커블>의 엘라이자(사무엘 잭슨)가 괴수형 악당이라면 <23 아이덴티티>의 비스트(맥커보이)가 전사형 악당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많은 수의 인격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인격이 결국 그들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와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혹시 캐런 박사처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격리시키려 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선택한 필요악이 아닐까?
글 | 강인식
전 KBS, SBS PD, 전 싸이더스FNH 대표, 현 kt미디어 콘텐츠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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