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SUBS에서 관객들과 만나다
[아츠앤컬쳐] 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론강과 손강이 흐르는 도시 리옹에 현대무용의 대가 카롤린 칼송이 그 곳의 관객들을 만났다. 리옹은 수도인 파리와 항구도시 마르세유와 함께 프랑스의 주요도시로 손꼽힌다. 실제로 파리에서 TGV를 타면 정확히 두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으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전통적으로 고급 섬유생산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고, 프랑스 최고의 미식도시로 위상이 높다. 문화와 예술의 움직임도 매우 활발한 도시이다. 미술계 행사로는 리옹 비엔날레가 격년제로 열리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비상업 현대미술행사로 손꼽힌다. 더불어 무용 비엔날레가 개최되는데, 이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무용행사이다. 그 외에도 리옹오페라와 국립극장, 시립미술관, 현대미술관 등의 주요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무엇보다 리옹의 빛축제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행사로 명성이 높다.
SUBS, 론강을 따라 위치한 문화창작의 대규모 온실
파리의 센느강이 쉬크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리옹의 강에는 따뜻함과 여유가 보인다. 손강변에 위치한 SUBS는 문화예술의 창작공작소 같은 곳이다. 정확한 명칭은 Les Subsistances인데 이를 줄여서 SUBS라고 주로 불리는데, 프랑스어로 생필품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문화예술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산소와도 같은 생활필수품이다.
SUBS에서는 연극, 무용, 음악, 서커스 창작작업과 더불어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예술인들이 거주하는 레지던스 건물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또한 2007년부터 부지 내에 리옹 국립미술학교(Beaux-Arts de Lyon)가 설립되었다. SUBS가 설립된 장소는 다름아닌 문화유적지이다. 1640년에 최초로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되었으며, 이후 반세기가 넘은 18세기 초에 대규모 수녀원건물이 건립되었다. 이후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국가소유화되며 수녀들은 더 이상 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807년에 군이 시설을 매입한다. 이렇게 군대 소유지로 전환되면서 약 200년 동안 물류창고 및 군용 빵을 생산하고 커피를 준비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국가는 리옹시에 시설을 증여하면서 이 곳은 제 3의 탄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리옹시에서는 수 차례의 복구와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치고 1998년에 당시 리옹시장의 의지로 문화예술 창작공간 건립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2001년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후 시의 문화융성 정책과 시설 내의 행정인력 강화를 통하여 2003년에 마침내 국제 예술창작 공작소(Laboratoire international de création artistique)으로 컨셉을 확고히 하였다.
현대무용 페스티발 Le Moi de la Danse
연중 내내 다양한 문화행사로 창작과 공감의 열기가 남다른 SUBS에서 연초에 주요행사로 현대무용 페스티발을 개최하였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이 페스티발의 명칭은 ‘르 무아 드라 당스(Le Moi de la Danse)’로 직역하면 ‘무용 속의 나’이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나’는 한 달 두 달 할 때의 ‘달’과 발음이 같다. 그래서 귀로는 행사명이 마치 ‘무용의 달’처럼 들린다. 실질적으로는 무용을 할 때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과독창성은 무엇인가? 동작을 통하여 나는 어떻게 영감을 받는가?' 등 춤추는 주체의 본질에 대한 의문에 초점이 맞춰진 행사이다. 이에 유럽의 안무가를 초청하여 창작공연을 선보이고 대담의 시간도 가졌다. 더불어 워크샵도 함께 진행되었다.
카롤린 칼송(Carolyn Carlson), 프랑스 현대무용의 대모
《난 프랑스 현대무용의 할머니로 통해요.》라며 관객들과 소통을 시작한 카롤린 칼송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젊어서부터 함께 작업한 동료들은 물론 그녀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쟁쟁한 안무가가 되었다. 그리고 70세를 훌쩍 넘긴 오늘도 제자를 양성하고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1943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실제로 덴마크 혈통을 지녔다. 어릴적부터 덴마크 할머니로부터 자연과 함께 뛰놀고 그 안에서 자유함을 가르침받았다며, 어릴 적부터 하루종일 춤을 추는 게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비롯한 순수인문학을 공부했다. 어느덧 스무살 무렵 미국 무용계에 입문하였고, 1971년에 미국을 떠나 파리로 온다. 이후 그녀는 파리 국립오페라무용단과 함께 작업을 하며 파리 무용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Blue Lady를 비롯하여 기존의 무용에 대한 개념을 과감하게 혁신한 작품들을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다. 2016년 9월 ‘서울세계무용축제(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ㆍ시댄스)’의 공연을 위하여 방한하여 한국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100세까지 춤을 추고 싶다는 그녀의 세월을 초월한 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SUBS 홈페이지 http://www.les-subs.com/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통신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