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lesienne Madame Ginoux with Gloves and Umbrella Arles(반고흐, 1888)
LArlesienne Madame Ginoux with Gloves and Umbrella Arles(반고흐, 1888)

[아츠앤컬쳐]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로는 《별》, 《마지막 수업》 등이 있다. 희곡 《아를의 여인(L’Arlesienne)》은 비제(Bizet)가 작곡해 유명해졌다. 비제는 도데로부터 이 곡을 의뢰받은 뒤 작곡료를 빨리 받기 위해 서둘러 작품을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멜로디나 화성·리듬 등에 전혀 손색이 없고, 주제와 민요 가락의 조화가 돋보인다.

사실 ‘아를의 여인’을 - 이 아가씨는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3막의 비극은 도데의 단편 자체로는 아무런 평판을 얻지 못하였지만, 음악이 큰 인기를 끌었다. 희곡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참고로 알퐁스 도데의 단편에는 주인공 이름이 ‘프레데릭’이 아닌 ‘장’이며, 비베트라는 인물도 나오지 않는다).

프레데릭(Frederic)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프로방스 지방의 유서 깊은 농가의 맏아들이었다. 그는 가까운 아를에 사는 한 아가씨를 사랑하여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나 어머니는 그 결혼에 반대했다. 반면, 프레데릭을 남몰래 사랑하는 한 아가씨가 있었다. 비베트라는 같은 마을의 농가집 처녀였다. 그녀는 프레데릭이 아를의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파했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프레데릭과 아를의 여인 사이에 혼담이 무르익어 갈 때 한 사나이가 찾아왔다.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는 제 약혼자입니다. 저와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지요.” 프레데릭의 집에서는 이것으로 도리어 프레데릭이 아를의 여인과의 결혼은 접고 만사가 다시 잘 되어 가려니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반대로 프레데릭의 아를의 여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이에 프레데릭의 어머니는 비베트를 설득했다. 프레데릭을 구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비베트 너밖에 없다고…. 어머니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비베트는 난생처음으로 프레데릭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했다. 프레데릭은 처음에 그 사랑을 거절하지만, 어머니의 말대로 비베트에게서 위로를 발견하고 그녀와 결혼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약혼 피로연은 축제일에 거행되었다. 그날은 아를의 여인의 약혼자라는 사나이도 참석했다. 그는 진심으로 프레데릭과 비베트의 약혼을 축하했다. 프레데릭의 관심이 아를의 여인한테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에게도 더할 수 없이 반가운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야말로 아를의 여인이 자기 것이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이 말을 들은 프레데릭의 마음에는 질투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주위의 제지로 겨우 무사하기는 했지만, 프레데릭의 질투심은 가실 줄을 몰랐다. 질투심은 갈수록 더해져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착란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아를의 여인이 약혼자라는 사나이에게 끌려가는 환상을 본 프레데릭은 그 뒤를 쫓아가려고 하다가 계단 위에서 굴러떨어져 죽고 말았다.

한국판 아를의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한 남성(이하 “A씨”)의 유족들이 한 여성을 대상으로 소송을 한 적이 있다. A씨는 해외여행을 갔다가 연상인 이 여성을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다. 당시 A씨는 수도권에서, 여성은 지방에서 각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A씨는 여성이 거주하고 있는 곳까지 주로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왕래하며 사귀어왔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여성은 A씨에게 이별을 통보하였다. A씨는 곧장 다음 날 새벽에 여성의 집에서 그 여성을 만났으나, 결국 여성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였다. A씨는 같은 날 오전, 그 같은 건물 복도 끝 창문을 통해 스스로 건물 1층 바닥으로 몸을 던져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유족들은 여성에게 그가 자살한 무렵 이미 다른 남성(이하 “B씨”)과 교제하고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법원에 주장하였다. A씨는 여성과 3년 이상 교제하면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여성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길게는 1주일 이상 여성의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은 A씨가 자살한 지 약 7개월 후 B씨와 결혼하였는데, 유족 중 한 명이 위 결혼식에 참석하였다가 여성과 B씨가 A씨와 헤어지기 전부터 교제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A씨의 자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수사기록을 넘겨보는 것을 우연히 지켜본 유족이 여성과 B씨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 일부를 보게 되었는데, A씨가 자살한 무렵 여성과 B씨가 이미 서로 깊이 교제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A씨는 여성이 B씨와 몰래 교제하면서 그와의 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탓에 따른 배신감 등 정신적 고통에 빠진 나머지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이므로, 여성이 이에 대한 위자료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민사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법원(1심)은 불법행위와 결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자살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견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한 상당인과관계는 부정된다고 하였다.

즉,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 및 후유증의 정도가 너무나 큰 나머지 이러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사람으로서는 통상적으로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살아갈 희망이나 의욕을 상실하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인정되어야 불법행위와 자살로 인한 사망의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A씨가 여성의 결별선언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성이 이러한 자살이라는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남녀간에 애정이 깊은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연인 간의 결별선언이라는 행위가 통상적으로 상대방의 자살을 초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족들이 의심하는 대로 여성의 행위와 A씨의 자살로 인한 사망의 결과 사이에 법률적으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여성의 행위는 손해배상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법원은 판결문을 통하여 유족들에게 이는 젊은 남녀가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불행한 사고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천재지변이나 운명이 그렇듯이, 법률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고 그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했다.

‘법률은 이런 행동을 하면 대개는 이런 결과가 발생한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원인행위만을 다룬다. 따라서 이별통보 후의 자살이라는 이례적인 선택을 두고 상대에게 법적 책임을 논하기는 어렵다. 설혹 미혼남녀가 서로 사귀다가 변심하여 다른 이성을 만나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이 끼어들 문제는 못 된다. 법률이 인간사 갈등 모두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법정이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영역도 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릴 수밖에 없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파운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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