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를 만난다는 긴장감과 설레는 맘으로 인사동의 한적한 한식당에 들어섰다. 밝은 미소로 맞아주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로베르토 파치(Roberto Pazzi)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것처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로베르토 파치는 우화적인 역사소설, 로맨틱한 시 그리고 평론까지 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 18개국으로 번역 출간된 《콘클라베Conclave》는 2009년에 한국에 출간되었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인 그에게 한국의 인상이 어땠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첫 소설인 《황제를 찾아서Cercando l’imperatore》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오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르조 바사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들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하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말살을 주제로 한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독일과 러시아에게서 박해를 받던 유태인과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의 상황이 비슷해 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출간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치씨도 시인이자 소설가로 알고 있습니다. 첫 작품 《황제를 찾아서》가 재 출간되셨다는데 무슨 내용인지요?
《황제를 찾아서》는 1989년에 출간된 제 첫 작품으로 12개국에서 번역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베르가모상과 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개정판이 이탈리아 ‘봄피아니’ 출판사에서 올해 출간되었으며, 한국의 ‘본북스’ 출판사에서 번역하기로 계약되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러시아 2월 혁명으로 가족들과 함께 유배되어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가족이 총살 당한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다룬 역사소설이지만, 우화적인 스타일로 ‘역사 동화’라고도 부른답니다. 왜냐하면 유배되어 갇힌 사람들을 위한 체호프식 애가(哀歌)인 동시에 섬세한 마법과 상상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는 공상이야기지요. 이 원고가 출간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공산당을 부정하는 내용이라 여긴 탓이었죠. 1980년대 이탈리아는 당시 공산당 정당이 우세했으니 어느 출판사도 책을 내려 하지 않았지요. 1989년 러시아 공산당의 몰락으로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던 제 책이 출간될 수 있었고 또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파치씨는 이탈리아 작가이신데 왜 소설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시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꾸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때 이탈리아 소설에서 서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모라비아와 같은 네오리얼리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런지 톨스토이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게 되었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제 작품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엿보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톨스토이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파스테르나크, 불가코프 같은 작가들의 환상적인 소설들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열두 살 쯤 되었어요. 서른 세 살 되던 해에 한달 만에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던 거죠. 소설을 쓰기 전에는 시를 썼는데, 시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적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다시 말해 진실을 강하게 전달하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믿는 것은 글을 통해 죄와 같은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은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답니다.

올해 맨부커 상을 한국 작가가 수상했는데 혹시 작품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알고 계신 다른 한국 작가 있는지요?
안타깝게도 그 소식은 잘 모르네요. 한국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게 된 한국 영화감독은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라는 영화인데, 아마도 제가 관심을 둔 경향이 역사라 그런 거 같습니다.

글쓰기와 진실에 대해 강한 어조로 말하는 로베르토 파치는 이탈리아 칼비노의 후계자라고 말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에서 시적인 인생을 찬가한 로베르토의 《황제를 찾아서》(본북스)는 곧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글 | 정란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이탈리아어 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0년 이탈리아 영화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인 ‘이탈치네마italcinema’를 오픈하면서, 이탈리아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영화공부를 시작하였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이탈리아 영화예술제NEW ITALIAN FILM & ART FESTIVAL’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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