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차세대 거장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
[아츠앤컬쳐] 사람, 도시, 국가, 영화를 다룬 영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는 지식인 젭(Jep Gambardella)의 눈을 통해 현대 로마를 보여주고 있다. 시적으로 표류하는 로마의 관능주의자인 젭은 누렇게 물든 커다란 이 사이에 담배를 물고 등장한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오고 그 군중들을 흥분하게 만들어 마치 유기체처럼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젭 역시 몸을 흔들며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로마의 전역에 서 있는 대리석 성인들 중 하나를 연상시키는 태도이다. 젭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모습들은 환상적이다 못해 영적인 광란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유물과 관광객으로 가득한 불멸의 도시인 로마를 배경으로 과거의 유산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짓누르는지를 다루고자 했다. 소렌티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고 연극계에서 실력을 다진 배우인 토니 세르빌로(Toni Servillo)가 주인공 젭을 아주 매력적으로 만든다. 젭은 작가지만 40년 전에 걸작으로 칭송받던 유일한 소설인 『인간 기구』 이후에는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기자로 일하면서 콜로세움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딸린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로마의 촌스럽고 추한 모든 것들을 자신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재담과 선웃음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파악할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을 찾는다. 그는 스트리퍼에게서 그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로맨스는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 젭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만큼 똑똑하지만,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편안한지 자랑하지만,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무언가가 더 있기를 바란다. 소렌티노의 다른 영화들처럼 자신들의 집착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젭의 삶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그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모두 젭을 좀 더 현명하게 만든다.
“파티를 초라하게 만들 아우라를 갖고 싶었다.” - 주인공 젭의 대사
테베레 강의 언덕을 배경으로 프롤로그가 시작되는 <그레이트 뷰티>에서 관광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인 리소르지멘토 영웅 흉상들 주변에 이탈리아 사람들 몇 명만 있을 뿐,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풍경, 도시, 사람, 역사를 관광하고 있다. 젭은 26세에 로마에 도착했을 때 “상류 사회의 왕”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음을 보이스 오버로 설명한다. 하지만 파티에는 가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실패로 만들 힘”을 갖고 싶었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이러한 사소한 해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젭이 1970년 로마에서 파티를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과 정치적 폭력의 시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에는 로마가 이처럼 폭력적이고 우울한 순간이 있다.
“장례식은 하나의 사교장이다.” - 주인공 젭의 대사
‘로마와 죽음’이라고 새겨진 가리발디 동상부터 젭이 눈물을 머금고 관을 들어 올리는 장례식까지 <그레이트 뷰티>에는 죽음이 따라다닌다. 느슨하게 연결된 일련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젭의 생일 직후 집중된다. 바로 그가 바닷가 풍경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보고 미소 짓는 신비로운 금발 여인인 첫사랑이 죽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녀의 남편이 젭에게 그 비보를 전하고, 두 사람이 함께 울먹인다. 이 장면을 소렌티노는 애가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죽은 여인에 대한 젭의 기억을 환기하게 시킨 후 퍼붓는 빗속에서 두 남자가 끌어안는 눈물겨운 절정에 이른다.
1968년 및 그 혁명 징후와 상징적으로 연결되는 연인의 죽음이 이야기를 떠나지 않고, 젭이 로마를 배회하고, 친구들과 식사하고, 고백조로 들리는 보이스오버로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는 동안 그의 주위를 맴돈다. 우아한 복장에 은발을 뒤로 빗어 넘겨 목 부분에 컬이 지게 하고, 재킷 호주머니에 손수건을 꽂은 젭은 바로 19세기에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던 한량의 모습과 같다.
과거의 기억에 직면한 젭은 현재를 더 철저히 주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거리와 강을 따라 걸으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을 만끽한다. 파티, 식사 등 모든 것들이 친숙함 속에서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레이트 뷰티>는 첫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해준다. 어느 시점에서 주인공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향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린을 나타나게 했다가 사라지게 하는 마술사 친구에게 젭 자신도 사라지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친구가 한 말인 “모두 속임수이다.”에서 진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건 그냥 속임수이다.” - 주인공 젭의 대사
주인공 젭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면서 두 번째 책을 쓰려고 생각하지만, 결국 쓰지 못했고, “나는 위대한 아름다움(그레이트 뷰티)을 찾고 있었지만,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감명을 주는 것은, 우리가 늘 갈망하는 아름다움이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들, 평범한 일상의 행복, 우리가 살고 있고 경험하는 바로 지금은 누구에게든 똑같이 아름다운 것들이다.
멋진 이탈리아 풍광을 볼 수 있는 시퀀스가 엔딩 크레딧 중에 테베레 강에서 배를 타고 고요히 흘러가는 동안 반복되는데,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긴 엔딩 크레
딧 같다. 소렌티노 감독은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것을 다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강조하는 것이리라.
“65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들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주인공 젭의 대사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 _ 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