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백작,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아츠앤컬쳐] 네오리얼리즘의 이상을 발전시키고 예술적으로 기여한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영화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 감독이다. ‘붉은 백작’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비스콘티는 귀족 출신으로 청년 시절에는 리얼리스트이자 공산주의자였으며, 말년에는 탐미주의자였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영화계에 입문하기 전까지의 삶과 첫 작품인 <강박관념>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시작이 된다.

비스콘티는 밀라노 모드로네 공작 집안에서 7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청년기까지 풍요롭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독서광인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 프루스트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의 상당한 독서량은 훗날 영화 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어머니의 음악에 대한 애정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음악 속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첼로를 전공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스콘티 집안은 화려한 파티와 무도회를 자주 개최했고, 스칼라 극장에 지정좌석을 둘 정도로 문화생활을 즐겼으며 해마다 외할머니를 만나러 파리를 방문했다. 이러한 문화적, 경제적 혜택은 오히려 정서적으로는 혼란스럽고 폐쇄적이며 고집스러운 성격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비스콘티의 삶을 살펴보면 자신의 선택에 의한 문화적 경험은 아니지만 유년시절에 접하게 된 음악, 독서, 연극 그리고 오페라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예술적 창작열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30세가 된 1936년은 비스콘티의 일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해였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소개로 파리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장 르누아르 감독의 <시골에서의 하루>(1936)에서 소품 담당으로 일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좌파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르누아르 감독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은 비스콘티에게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 비스콘티는 <치네마>지의 젊은 지식인 그룹들과 교류하게 된다. 이러한 기회들이 비스콘티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그는 첫 작품 <강박관념>을 연출하게 된다. 이 영화는 새로운 영화의 상징이 되었는데 세상과 사회적 관계, 급진적으로 변화한 문화에 대한 책임감의 필요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몇 년 동안은 이탈리아가 예술, 문화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영화와 문학에 대한 토론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정점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도화선으로 작용해 비스콘티의 이후 제작 작품들에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강박관념>은 전후에 네오리얼리즘을 전개하고 심화시키면서 결국 이탈리아 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파시즘의 몰락과 독일 점령군들에게 대항한 지하운동과 때를 맞추어 이탈리아 대중에게 발표된 <강박관념>은 비스콘티라는 위대한 감독의 탄생을 알렸다.

 

‘전(前)네오리얼리즘’이라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 세팅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의 사회현상의 표현, 정치적 주장, 리얼리즘을 의도한 스타일을 말한다. 아울러 전후 이탈리아 영화운동의 흐름이었던 네오리얼리즘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첫 작품 <강박관념(Ossessione)>은 1942년에 제임스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허름한 여관의 식당에 낯선 젊은 남자가 등장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지노는 땀투성이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떠돌이로, 오페라광인 뚱뚱한 남편 브라가나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한다. 브라가나의 아내 조반니와 지노는 얼마 되지 않아 달아날 계획을 세우지만, 도망을 쳐도 안정되지 않을 삶이 불안해서, 조반니는 집으로 돌아오고 지노는 다시 떠나게 된다.

세 사람은 이웃 축제장에서 다시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만취한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 죽게 된다. 딴 곳으로 가자는 지노와 식당을 잘 꾸려서 살자는 조반니와의 갈등이 깊어진다. 남편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노는 조반니에게 이용당했다고 싸우지만 다시 잘 지내게 된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앞차의 매연을 피하려고 추월하던 중에 자동차가 추락해 조반니는 죽고 지노는 추적 중이던 형사에게 연행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시골의 허름한 여관의 식당, 너무 평범해서 밉기까지 한 남편 브라가나, 정열적인 젊은 부인 조반니, 그리고 방랑자 지노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 설정이라면 이들 간에어떤 욕망의 분출이 있으리라는 걸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비스콘티는 정열의 탐욕적 속성보다는 내면의 파괴적인 힘이 어떻게 살인과 죽음으로 치닫는가를 보여준다.

<강박관념>은 파시스트 검열을 피하기 위해 선택된 작품이다. 남녀의 불륜과 살인이 플롯의 골격이지만, 주인공의 인간형상을 통해 파시즘 치하에서 억눌린 이탈리아 국민의 이미지를 암시한다고 해서 해외 배급이 금지되기도 했다. 영화는 원작의 부도덕한 남녀의 열정보다는 빈곤하고 어두운 당시 사회 환경과 두 인물의 모호한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들과 비스콘티에게는 소설의 문학적 가치보다 소설의 스토리가 가진 대립과 논쟁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사물의 일상성이나 정돈된 흐름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와 분위기를 파괴하는 새로운 방식은 그 당시에 이슈가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금기적 주제인 피, 섹스, 열정, 범죄, 윤리적 모호함 같은 것들을 이 영화에는 그리고 있다. 당시 관객들이 원했던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순응주의와 무기력에 병든 이탈리아 지식인들에게는 일종의 쇼크와 같았다. 또한, 비극적인 스토리를 받쳐주는 목가적인 풍경은 전쟁의 슬픔과 고통으로 어두워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강박관념>은 일반적으로 촬영되던 치네치타(cinecitta) 세트장을 벗어난 야외 로케이션과 느슨한 세팅, 미디엄 쇼트를 주로 이용해 리얼리즘 터치의 감각적 촬영, 장 르누아르로부터 배운 연출기법과 인물 묘사 등이 뛰어났다. 사실주의적인 흐름을 잘 드러낸 롤 카메라의 움직임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들보다 정교하지만 이 영화의 장면화는 예상 밖으로 거친 느낌을 준다. 드라마의 배경으로 강렬한 햇빛과 메마른땅을 지닌 포강 계곡을 선택함으로써 이탈리아 주류 영화들이 보여주는 화려함을 거부하고 있다. 황폐하고 빈곤에 찌든 국가를 그대로 묘사한 그는 이탈리아가 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정치가들의 분노를 샀다.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는 영화텍스트에 존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갈등을 주도하는 여성과 연약한 남성의 갈등으로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파시즘과 가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던 관객의 마음속에 있는 가부장적 이념과 갈등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개인적인 감정과 사상은 정치적 입장에 지배되고 있을 때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비스콘티는 당시 파시즘과 가톨릭에 대항하는 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영화를 만들어간다. 자크 오몽은 영화인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이데올로기적, 기술적, 미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론적 측면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창작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 떠오른다.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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