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제목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당연히 무엇보다 우선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프레임(frame)¹을 다루고 있는데, 기본전제는 “우리는 뇌가 우리에게 이해하도록 허락한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 두뇌 안의 프레임으로 납득 가능한 것만을 이해할 수 있고, 사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을 그대로 남겨둔 채 사실을 무시하거나 반박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튕겨 나간다.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의 이해로, 우리 뇌의 회로 안에 유지되는 강력한 시냅스(synapse)²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고 수월한 얘기와 관련이 있다. 결과적으로 프레임이 다른 사람은 개념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논쟁의 철칙은 상대방의 프레임에 빠져들지 말고 상대방을 자신의 프레임으로 끌어들이라는 것이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방송에 나와 자기 딴에는 결연하게 내뱉은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상황을 끝낸 거나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상대방의 프레임에 걸려든 거다. 그러니까 닉슨을 사기꾼으로 보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닉슨의 이 말을 듣고 사기꾼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는 얘기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금폭탄’이란 말 속에는 세금은 무서운 것, 피해야 할 무엇이란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 “게이결혼에 찬성하십니까?”라고 물을 때와 “결혼이 평생의 서약을 통한 사랑의 실현이라고 보십니까?”라고 물을 때의 반응은 천양지차일 수 있다. 우리는 겉으로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보여도 그 속에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 프레임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때때로 이기기는 하지만 지는 경우가 더 많은 미국의 진보에게 보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진보의 가장 큰 약점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오해에 사로잡혀, 어떤 현실에 대한 사실을 제시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 현실에 ‘눈떠서’개인적 견해를 바꾸고 사회변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다는 것이다. 진보는 사실과 정책, 프로그램을 장황하게 제시하는 세탁목록 나열방식에서 벗어나 더 명확한 도덕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에 관한 문제다. 인상적인 어구가 조금이라도 의미전달 효과를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뇌에 개념이 자리잡아야 한다. 사실을 진술하고 그 사실이 상대편의 주장과 모순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이 사실을 이긴다.

유목민족에게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형사취수제’란 관습이 있다. 물론 이것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징기스칸이 유년 시절에 겪었듯이 형의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또 에스키모인들은 손님에게 자신의 부인이나 딸을 동침하도록 배려하는 게 기본적인 손님맞이 예의였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현대의 과학적인 지식을 갖추었다기보다 근친결혼에 의한 저능아나 기형아의 출산을 오랜 세월에 걸쳐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합스부르크가의 비극은 근친결혼의 폐해를 알면서도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런 개념 자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구구절절 설명을 한들 씨알머리가 먹히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머와 은유다. 선량한 유머감각은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표시이고, 말의 억양이나 어조를 높이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약점을 드러낼 뿐이다. 은유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과정의 문제이며, 인간의 인지과정의 많은 부분이 본질상 은유이며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이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다면 뛰어들지 마라. 그래도 뛰어들고자 한다면,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휘둘리지 마라.”
¹ 프레임(frame): 틀
² 시냅스(synapse): 한 뉴런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지점

글 | 최병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체이스맨해턴은행과 한화증권 국제부 그리고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아츠앤컬쳐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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