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책의 제목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리인식과 지식의 비대칭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요소다. 지리학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훌륭한 방법으로, 일견 까다롭게 보이는 문제에 대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설명이나 통찰을 제공해준다.” 저자인 하름 데 블레이는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아프리카에서 대학공부를 했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간 3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지리학의 관점으로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 반세기 동안 인구는 90억 명까지 늘어나고, 세계 곳곳의 경제는 휘청이며, 테러와의 분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러한 전 지구적 도전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지리적 문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학자들은 세상을 시각적 혹은 연대기적으로 바라보고,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은 구조적으로 바라보지만, 지리학자들은 공간적으로 바라본다고 하면서, 지리상 발견의 시대는 끝났어도 ‘지리학적 발견’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일반대중들보다 더 잘 안다는 자신감에 혹하여 미국을 베트남의 늪지대로 끌고 가도록 방치했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번민에 찬 회고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베트남전쟁의 기획 및 실행과정에서 불거진 인도차이나의 자연, 인문지리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에서 열린 국제회의의 개회사 도중에 자신이 볼리비아에 오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레이건 대통령의 일화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는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었던 만큼 알고 있었는가 하는 통찰력 있는 질문을 저자는 던지고 있다. 저자는 일국의 문화에 개입해 이를 바꾸려는 노력은, 그것이 대규모 공조로 뒷받침된 국제적 노력이라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과 독일에서 재건에 성공했던 경험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비교하는 자들은 중대한 지리적 차이를 잊고 있다. 서독과 일본은 민족, 종교적 차이와 갈등으로 쪼개져 있지 않았으며, 미국과 연합군은 서로 교전 중인 분파들을 떼어 놓는 한편 적대적 환경에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 않았다.”
이 책은 또한 기후변화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지금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식의 ‘지구온난화’는 절대 없다고 단언한다.
“지리학의 기초를 접하지 못한 일반대중들은 과학연구가 진행되는 도중에 발표되는 서로 모순된 결과들을 접하면서 온갖 종류의 잘못된 정보에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 일례로 1960대에는 온난화가 아니라 한랭화의 임박을 예측하는 연구발표들이 주류를 이뤘다.”
기후변화는 이산화탄소배출뿐만이 아니라 태양의 흑점활동, 지구의 자전축, 지구의 궤도 등 수많은 주기와 맞물려 있으며, 현재의 지구온난화에 자연과 인간이 각각 어느 정도 비율로 기여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1990년대에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 추세에 대한 최초의 경고를 발했을 때만 해도,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Collapse〉 에서 설득력 있게 요약했듯이 그 방향성의 지속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추잡한 논쟁이 과학을 정치화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또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의 냉전에 대해서도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비록 이데올로기적으로 적대하긴 했지만, 이는 한 문화권 내부에서 일어난 냉전이었기에 재앙의 위험도 그만큼 줄어들었던 것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공통된 기반이 그보다 훨씬 적으며, 두 나라가 적대한다면 이는 이문화간 냉전으로서, 치명적인 오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미국과 서구에 대한 중국의 시각근저에 놓인 그들의 역사 및 문화지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경험을 헤아려야 한다.”
‘잘나가던 유럽, 종이호랑이가 될 것인가’, ‘골치아픈 땅 러시아’에서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저자가 아프리카에 대해서만큼은 희망이 있다고 단언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어느 로마황제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콩고 북동부의 열대우림에서는 휴대폰 제조에 쓰이는 콜탄을 채굴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아프리카 침투는 냉전의 대리전이 끝난 이후 이 대륙에 발생한 가장 불길한 사건일 수도 있다며, 떠오르는 초강대국과 세계 최후의 주변부 사이의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단서를 잊지 않는다.
〈통섭〉으로 널리 알려진 최재천 교수의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이 한 연구조사에서 대상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연경관을 그려보게 하고, 그렇게 모인 수천 장의 그림 중에서 공통된 요소를 추출했더니 바로 동아프리카의 사바나를 닮은 경관이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는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이며, 우리는 아프리카를 떠났을지 몰라도 아프리카는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류의 요람 아프리카의 시대, 아프리카의 차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자는 다음의 말로 길다면 긴 이 책을 마무리한다.
“확실히 검증된 기초 위에 건설된 지리적 대계야말로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세계의 종말이 걸려 있다”
글 | 최병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체이스맨해턴은행과 한화증권 국제부 그리고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아츠앤컬쳐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