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s Jacob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 du mobilier « aux épis », © CHÂTEAU DE VERSAILLES, DIST. RMN © JM MANAÏ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 du mobilier « aux épis », © CHÂTEAU DE VERSAILLES, DIST. RMN © JM MANAÏ

 

[아츠앤컬쳐] 프랑스 앤틱가구의 역사는 에베니스트(ébéniste)들의 역사이다. 오늘날 가구 디자이너라고 일컫듯이 과거에는 이들을 에베니스트라고 불렀다. 에베니스트라는 단어가 처음 사전에 등장한 것은 1732년이다. 이 말은 ‘에벤(ébène)’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영어로는 ‘에보니(ebony)’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흑단’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열대성 기후에서 생산되는 이 목재의 특징은 빛깔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둡다. 단단하고 견고한 목재로 광도 잘 난다.

한편 그 기원은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에벤 목재를 지중해를 거쳐, 그리스에서 사용되었고, 이후 로마제국으로 이동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용도를 살펴보면 주로 테이블이나 가구 표면을 장식하는 데 사용된다.

Georges Jacob, Fauteuil
Georges Jacob, Fauteuil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이미 에벤이라는 목재는 특별한 자격이 있는 가구공들만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가구가 아닌 소규모의 오브제에만 에벤을 사용하였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중반에 가구공들의 조합인 ‘므뉘지에 조합’에서 일부에게만 에벤을 작업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했다고 한다. 참고로, 므뉘지에의 작업이 가격이 합리적이고 소박하다면, 에베니스트의 가구는 좀 더 섬세하고 화려한 가구가 대부분이다.

​Estampille Jacob Desmalter, rue Meslée Uitilsée par Georges Jacob (1739~1814) et François Honoré Georges Jacob Desmalter (1770~1841) de 1803 à 1813​
​Estampille Jacob Desmalter, rue Meslée Uitilsée par Georges Jacob (1739~1814) et François Honoré Georges Jacob Desmalter (1770~1841) de 1803 à 1813​

 

에베니스트라는 직업이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은 가구의 장식적인 부분, 즉 실용성뿐만 아니라 미학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에베니스트 가구라고 하면 고품질의 가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구 디자인의 고안부터 목재 선택, 톱질, 대패질, 조립, 장식까지 에베니스트가 모두 책임을 지고 장인정신에 입각해 제작한다. 때로는 마무리 작업인 마케트리 장식, 브론즈 장식, 목재 조각, 금지장식, 광택 등은 각각의 전문가에게 맡겨지기도 한다.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 1780~1790, Musée Nissim de Camondo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 1780~1790, Musée Nissim de Camondo

 

​Portrait de G Jacob par Simon Julien, 1793​
​Portrait de G Jacob par Simon Julien, 1793​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에베니스트들 중에서 이번 호에서는 조르쥬 자콥(Georges Jacob, 1739~1814)에 대해서 살펴보자. 자콥은 18세기의 대표적인 프랑스 에베니스트이다. 스승 루이 들라느와에게 사사받은 후 1765년에 에베니스트 자격을 수여받았다. 본래 농부 출신이었다는 예외적인 경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루이 15세 가구를 생산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이 16세 가구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조르쥬 자콥하면 루이 16세 가구의 대표적인 에베니스트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소파와 의자가 유명하다. 루이 16세 가구답게 대부분 가구의 다리가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디자인되었다. 또한, 다리 표면에 세로로 홈을 내어 조각하였는데, 이는 전형적인 루이 16세 가구의 특징으로 다른 에베니스틀도 그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아 적용하였다.

Georges Jacob, Fauteuil à l'étrusque,livré en 1787 pour la laiterie de Rambouillet. (Exposé au Petit Trianon)
Georges Jacob, Fauteuil à l'étrusque,livré en 1787 pour la laiterie de Rambouillet. (Exposé au Petit Trianon)

 

그만의 전형적인 모티브로는 삼각형 무늬와 아칸더스 식물 줄기 장식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작은 태양 무늬를 큐브 형태 안에 조각해서 소파의 다리부분과 걸터앉는 부분의 연결 부분에 장식하였다. 소파 손잡이의 끝 부분을 둥글려서 마치 지팡이 끝이 안으로 말리는 것처럼 디자인하기도 했다. 또 한가지, 영국제 캐비닛에서 영감을 받아서 일찍이 마호가니 나무를 소파나 의자의 등받이 부분에 사용한 것이다. 특히 등받이 부분에 조각을 하여 마치 창살처럼 공기가 통하게 제작한 디자인인데 ‘포테이유 아 레트뤼스크(fauteuil à l'étrusque)’라 부른다.

David
David

 

무엇보다 조르쥬 자콥은 뛰어난 기술력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남긴 시대를 앞서간 에베니스트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조르쥬 자콥의 주 고객으로는 마리 앙투아네트, 훗날 샤를 10세가 된 아르투아 백작, 훗날 루이 18세가 된 프로방스 백작, 샤르트르 공작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웃 나라의 왕실을 비롯하여 영국으로 수출하는 중개상인인 다게르도 자콥 마니아였다고 한다. 한편 1780년대 말에는 로마제국의 가구에서 영감을 받아 소파를 제작하였는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에 여러 번 등장한다. 더불어, 에베니스트 조르쥬 자콥과 화가 다비드의 우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livré pour le Cabinet de la Méridienne du petit appartement de la reine à Versailles, circa 1785
Georges Jacob, Fauteuil « à la reine »,livré pour le Cabinet de la Méridienne du petit appartement de la reine à Versailles, circa 1785

 

조르쥬 자콥의 아틀리에는 그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1780년대에 기록된 문서를 보면 고용된 인력만 해도 수백 명이 넘었다고 한다. 기록자에 따라서는 700명이 넘었다고도 한다. 그러니 이곳에서 생산되었던 가구 수량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다. 한편 조르쥬 자콥은 프랑스 혁명 당시 자금난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다수의 주요고객들이 가구 비용을 결제하지 않고 해외로 도피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의 가구이다 보니 그 손실도 매우 컸다고 전해진다.

L_Etrusque
L_Etrusque

 

결국, 그는 1796년에 파산신고를 하고 두 아들에게 아틀리에를 물려주었다. 그의 자손들에는 세 아들 중 두 아들인 조르자 자콥 2세(1768~1803)와 프랑수아 오노레 조르쥬 자콥 데말스터(1770~1841), 손자인 알퐁스 자콥 데말스터(1799~1870)가 그의 뒤를 이었다. 세 사람 모두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중요한 에베니스트들이다. 그러니 루이 15세 때부터 나폴레옹 때까지 몇 세기를 아우른 에베니스트 가문이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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