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혼이 담긴 현대무용 4편
[아츠앤컬쳐]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총감독이 교체된 후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다소 보수적인 면모를 고수하면서 창작에 매진했던 프랑스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모습이었는데 벤자민 밀피에(Benjamin Millepied)로 극단의 머리가 바뀌면서 드는 느낌을 형용해보았다. ‘국제적이다. 신선하다. 젊다. 그렇지만 깊이가 있다.’ 벤자민 밀피에는 영화 블랙스완의 무용을 지도한 이력을 지닌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면서 유명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다.
몇 달 전 카르티에 현대미술 재단에서 기획된 명사 릴레이 인터뷰에 참여한 그를 보면서 무용 천재라는 인상을 받았다. 폭발적인 창의성과 유연한 사회성을 지닌 그는 마치 동네 체대학생 정도의 친근한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한 인재가 지휘봉을 잡았으니 앞으로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행보에 퍽 기대가 된다.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진 4편의 무용은 다음과 같다. 니콜라 폴 안무의 <레플리크(REPLIQUES)>, 피에르 리갈 안무의 <살뤼(SALUT)>, 벤자민 밀피에 안무의 <투게더 얼론(TOGETHER ALONE)>, 그리고 에두아르 록 안무의 <안드레아우리아(ANDREAURIA)> 순서로 공연되었다.
그 중 이번에 새롭게 창작된 안무는 <살뤼>와 <투게더 얼론>이다. 이번 공연은 각각의 안무가들의 시적인 창작 세계를 담은 작품들로 예술적으로 구성되었다. 고전적인 표현부터 독창적인 안무까지 아주 폭넓게 잠재성을 끌어낸 수작들이다.
막을 연 작품인 <레플리크>는 2009년에 니콜라 폴의 안무로 초연되었다. 그의 첫 안무 작품인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고르기 리게티의 다소 상반된 성격의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창작한 이 작품은 ‘거울, 반영, 이중’을 다루면서 ‘주체의 이미지 구현’이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담고 있다.
<살뤼>는 2003년에 첫 번째 버전이 피에르 리갈의 안무로 발표되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 작품에는 힙합, 서커스, 록, 비디오 아트까지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이번에 발표된 2015년 버전에는 처음으로 고전적인 안무가 함께 구성되었다. ‘살뤼(Salut)’는 프랑스로 ‘안녕’ 또는 ‘인사’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말에서도 그렇듯이 ‘인사’라는 단어는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안무가는 자신의 관점을 믹스된 춤을 통하여 피력하고 있다.
<안드레아우리아>에서는 캐나다계 안무가인 에두아르 록이 2002년에 초연된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특히 미니멀리스트 뮤지션인 데이빗 랑의 음악에 맞추어 안무가가 ‘속도’와 ‘형태의 변조’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 작품에서 에투알 무용수인 알리스 르나방은 아슬아슬해 보일 정도로 어려운 동작이 많은 안무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프랑스와 베트남계의 알리스는 서구적인 체형에 동양적인 얼굴로 독특한 미모를 지니고 있으며, 침착하면서 절제된 듯한 강약이 담긴 연기와 고난이도적인 동작의 정확한 소화력과 과감한 표현력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한 뛰어난 발레리나이다. 2013년 12월에 파리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최고의 자리인 에투알로 임명받은 이후, 한층 더 자신감 있고 풍부한 표현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투게더 얼론>은 편안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남녀 한 쌍이 나와서 일상과 발레가 함께 공존하는 듯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의 동작을 소재로 아름다운 안무로 한편의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필립 글라스의 음악에 벤자민 밀피에 안무가 합해져 빚어진 이 작품은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물씬 풍겼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피아노 연주가 동반된 이 작품은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을 통하여 거품과 기교를 감하면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무용수들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한편 이날 공연에서 얼마 후 은퇴할 에투알 발레리나인 오렐리 뒤퐁의 아름다운 모습과 풍부한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오렐리 뒤퐁은 여느 발레리나보다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프랑스 에투알 발레리나이다.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높은 기술력으로 어느 무대에서나 돋보였던 그녀는 규정상 나이제한으로 현역 무대에서 올해 5월에 은퇴하게 되었다. 몇 달 후 <마농의 샘>을 고별무대로 향후 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

